상계주공 5단지 재건축 사업 조감도. (자료=서울시)
신탁 방식을 택한 여의도 한양아파트와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가 잇따라 재건축 사업 진행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신탁사가 급변하는 시장 환경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운영에 미숙함을 노출하자 신탁 방식 정비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커지고 있다.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노원상계주공5단지가 지난 25일 소유주 전체 회의를 열고 시공사인 GS건설의 선정 취소를 결정했다. 사업 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이 지난 1월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뒤 약 10개월만이다.
1987년 준공된 상계주공5단지는 최고 5층 840가구 규모 단지로 재건축을 통해 지하3층~지상 최고 35층, 5개동 996가구로 탈바꿈이 예정됐으나 이번 시공사 선정 해지로 사업 기간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시공사 선정 해지 배경에는 공사비 인상 가능성 외에 신탁사 수수료가 더해지면서 분담금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또한 공사 기간이 착공 후 48개월로 예정돼 이자 부담도 만만치 않다. 업계에서는 통상적인 재건축 사업 기간을 착공 후 36개월까지 정도로 본다.
시공권을 잃은 GS건설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GS건설 관계자는 "낮은 사업성과 인근 단지와 학교 등 좋지 못한 시공여건 등으로 인해 조합 내부에서도 다소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 토요일 시공사 지위 해제됐고 기 투입된 사업비용에 대해서는 소송 절차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신탁사가 주민 의견 수렴 끝에 시공사 선정을 취소하자 기존 조합방식보다 빠른 사업 추진을 기대한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탁사 역할에 대한 회의론도 불거졌다.
최근 정부가 신탁방식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신탁사에 정비구역 지정권한을 부여하는 등 신탁 방식 사업에 힘을 싣는 제도개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문성을 앞세운 신탁사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업운영에서 미숙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KB부동산 신탁이 추진하는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사업도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지난달 제동을 걸었다. 신탁사가 정비계획이 확정되기 전 시공사 선정에 나서고 사업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상가 부지를 정비계획에 포함시켰다는 거다. 이에 따라 시공사 선정 절차가 무산됐다.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목동 주요 단지도 신탁 사업 추진을 고민하고 있으나 반발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코람코자산신탁이 목동7단지 재건축을 신탁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발표하자 목동아파트재건축준비위원회연합회(목재련)는 즉각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목재련 측은 성명서를 통해 "절차적 하자뿐만 아니라 소유주 공지 없이 진행된 목동7단지 정비사업추진위원회와 코람코자산신탁의 불공정한 업무협약(MOU)의 체결을 강행한 점에 대하여 부당함을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고금리와 고물가로 공사비 인상 등 정비사업 환경 자체가 악화된 게 최근 정비사업이 파행을 겪는 가장 큰 원인으로 신탁 방식 자체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라면서도 "물론 신탁사가 조합의사결정 과정에서 적절한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조합원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돼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 한계가 있으며 여전히 조합 방식을 선호하는 소유주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건설동향 브리핑을 통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탁방식은 과도한 수수료와 검증되지 않은 시행 및 건설사업관리 역량, 신탁사·소유자의 이해관계 불일치로 인한 대리인 문제 발생 가능성 등이 단점으로 존재한다"며 "조합시행 방식이 앞으로 오래 기간 주된 시행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돼 조합시행 방식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