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해운사 HMM 인수전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이 임박한 가운데 입찰에 참여한 동원과 하림 중 누가 승자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원과 하림 모두 HMM 인수를 그룹 재도약을 위한 마중물로 삼겠다는 각오인 데다 그룹 오너도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HMM 본입찰에 참여한 하림·JKL 컨소시엄과 동원그룹을 대상으로 정성 평가를 진행 중이다. 매각 측은 자금 조달 구조와 경영 계획 등 항목을 평가해 이르면 이번 주 HMM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한다. 두 그룹이 비슷한 인수희망가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정성 평가에 따라 최종 승자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동원 ‘종합물류사업 연계’ VS 하림 ‘해운 시너지 강화’ 진검승부
HMM 함부르크호. 사진=연합뉴스
동원과 하림이 HMM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동원은 HMM 인수로 육상과 해상까지 아우르는 종합물류사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동원그룹은 지난 2016년 말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며 물류사업을 새 성장 동력으로 내세웠다. 이후 비물류 부문을 매각하고 동원로엑스로 사명을 변경하는 등 종합물류기업의 면모를 강조했다.
현재까지 항만하역과 육상운송에서 보관 및 유통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번에 HMM 인수 주체로 참여하는 것도 동원로엑스다. 동원그룹은 동원로엑스의 물류사업을 HMM의 해운사업과 연계해 각각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하림은 그룹 해운 자회사인 팬오션과 HMM의 시너지를 통해 대표 국적 선사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HMM은 앞서 경영 악화로 벌크선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컨테이너선 분야에 치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로 컨테이너선 운임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아 왔다. 이 때문에 벌크선 중심 해운사인 팬오션에 컨테이너선 중심인 HMM이 더해지면 중복되는 사업 분야 없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해운 네트워크를 통합해 영업력을 높이는 등 실질적인 협업이 가능하고 연료비를 절감하는 등 규모의 경제도 실현할 수 있다. 하림은 팬오션 인수 후 빠르게 실적 개선을 이뤄낸 만큼 HMM 운영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오너 자존심 대결로 번진 인수전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왼쪽)과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동원그룹,연합뉴스
동원과 하림 모두 HMM 인수에 적극적인 만큼 인수전은 두 그룹 오너의 자존심 대결로 번지는 모습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앞서 한양대학교 명예 공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HMM 인수는 꿈의 정점”이라며 HMM 인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김 명예회장은 1958년 한국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 실습 항해사에서부터 시작해 동원산업을 국내 대표 원양어업 회사로 만드는 등 한국 원양어업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동원산업을 바다에서 몸소 일궈낸 ‘바다 사나이’인 만큼 국적 해운사에 대한 의미도 한층 각별하다. 김 명예회장은 “동원그룹은 누구보다 HMM을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김홍국 하림 회장도 ‘꿈’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 김 회장은 맨손으로 양계사업을 시작해 하림을 국내 축산업계 1위 기업으로 일궈냈다. 이후 식품 제조와 유통 등으로 사업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지난 2015년 팬오션을 인수하면서는 ‘한국판 카길’을 꿈꿨다. 카길은 곡물 생산과 유통에서부터 사료와 해운을 아우르는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곡물 시장의 4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하림에게는 HMM 인수가 ‘한국판 카길’의 마지막 조각인 셈이다. 김 회장은 HMM 인수와 관련해 “앞으로 잘할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세 경영’부터 ‘돈주머니’까지…무리한 인수에 숨겨진 셈법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왼쪽)과 김준영 NS홈쇼핑 이사. 사진=동원그룹,JKL파트너스
하지만 이번 인수전을 두고 금융권과 해운업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HMM의 덩치가 하림이나 동원이 인수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HMM 인수를 위한 막대한 자금 조달이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꾸준히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두 그룹이 무리한 인수를 추진하는 데에는 다른 속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원그룹은 지난 2019년 김재철 명예회장이 퇴임한 뒤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동원그룹은 그동안 인수합병을 통해 사세를 빠르게 확장해왔다. 하지만 김 부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뒤엔 맥도날드와 보령바이오파마 등 인수에 실패하면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한 데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음에도 김 부회장이 4년 넘게 회장 자리에 오르지 않는 데에는 ‘김남정 시대’를 선포하기 위한 상징적인 치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위해 무리해서 HMM 인수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림그룹도 김홍국 회장의 장남인 김준영 NS홈쇼핑 이사가 HMM 인수전의 키맨 역할을 맡았다. 하림 역시 경영권 승계 밑작업을 진행하면서 최근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한 바 있다. 경영권 승계까지 한 걸음만 남겨둔 만큼 이번 인수전이 김 이사의 업무 능력을 대외적으로 입증하는 시험대가 된 셈이다.
하림그룹이 지주회사의 이익에 자회사를 활용한 전례도 문제다. 당장 최근에도 NS홈쇼핑의 자회사였던 하림산업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하림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기존 NS홈쇼핑이 하림산업에 투자했던 수천억원의 과실을 하림지주가 수확하게 됐다. HMM이 하림에 인수되면 ‘곳간’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