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재건축 현장. 본 기사 내용과는 무관. (사진=연합뉴스)
국내 건설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 여진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PF 위기의 정점을 확인한 이후 우발채무의 뚜렷한 감소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대형건설사들도 PF우발채무 규모를 크게 줄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 다만 이들의 PF 부실 리스크는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달리 중견 건설사는 PF우발채무가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게 여전한 과제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중 올해 2분기 기준 PF보증 대출잔액이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늘어난 건설사는 4개 건설사(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대우건설·SK에코플랜트)로 나타났다.
현대건설은 PF보증 대출잔액이 11조1310억원에서 11조4590억원으로 3% 가량 증가했다. 반면 책임준공 대출잔액은 22조1170억원에서 21조3110억원으로 3.6% 줄었다.
현대엔지니어링도 PF보증 대출잔액은 늘어난 반면 책임준공 대출잔액은 줄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올해 2분기 PF보증 대출잔액은 7540억원 수준으로 작년 말(6790억원)과 비교했을 때 11.1% 늘었으나 책임준공 대출잔액은 10조3460억원에서 9조8550억원으로 4.8% 감소했다.
SK에코플랜트도 PF보증 대출잔액이 9850억원에서 36.2% 늘어난 1조342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책임준공 대출잔액은 3조8920억원에서 24% 가량 줄어든 2조9590억원으로 나타났다.
대우건설은 PF보증 대출잔액이 9조5220억원으로 지난해 말(8조1130억원)과 비교했을 때 17.4% 늘었다. 책임준공 대출잔액은 11조3050억원으로 동일한 규모를 유지했다.
PF보증 대출잔액이 줄어든 주요 건설사도 책임준공 대출잔액 규모가 늘어나거나 소폭 감소하는 수준에 그쳤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말 PF보증 대출잔액이 2조3640억원이었으나 2.2% 줄어든 2조1320억원까지 낮아졌다. 다만 책임준공 관련 대출잔액은 같은 기간 3500억원에서 1조370억억원까지 약 200% 가량 급증했다.
DL이앤씨도 PF보증 대출잔액이 2조1990억원에서 1조8510억원까지 15.8% 낮아졌으나 책임준공 관련 대출잔액은 6조2760억원에서 6조4180억원으로 2.3% 소폭 증가했다.
GS건설은 PF보증 대출잔액이 3조3020억원에서 3조2670억원으로 1.1% 소폭 줄었고 책임준공 대출잔액도 8조4280억원에서 7조7640억원으로 7.9% 가량 감소했다.
포스코이앤씨는 PF보증 대출잔액이 6190억원에서 5400억원까지 12.8% 감소했으며 책임준공 대출잔액도 8조2050억원에서 8조740억원으로 1.6% 줄었다.
롯데건설(4조8870억원)과 HDC현대산업개발(2조4760억원)의 PF보증 대출 잔액도 각각 9.3%, 2.1% 줄었다. 반면 양사 모두 책임준공 관련 대출잔액은 9조129억원, 2조871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18.5%, 29.0% 늘었다.
주요 건설사들이 PF우발채무 관리에 나섰으나 규모 자체적으로는 줄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나 롯데건설과 현대건설은 자기자본 대비 PF보증 대출잔액 비율이 각각 183%, 95% 등으로 비교적 높다.
업계 내 관행으로 굳어진 책임준공 약정에 따른 대출잔액도 건설사의 향후 건설사의 재정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는 요소다. 자기자본 대비 책임준공 대출잔액 비율은 삼성물산(2%)과 SK에코플랜트(65%)를 제외하고는 모두 100%를 웃돈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정해진 기일 내 건설공사를 책임지고 마치겠다고 PF사업 대출을 내준 금융사 등 대주단과 체결한 약정으로 이를 지키지 못하면 시공사가 모든 책임을 진다. 시행사의 잘못된 경영으로 부도가 나더라도 PF대주단의 대출금을 시공사가 책임지고 상환해야 한다.
그러나 대형건설사는 책임준공을 비롯한 PF우발채무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업성이 양호한 지역 위주로 사업에 나섰으며 이를 감당할만한 재무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9일 제4차 부동산PF 연착륙 대책점검회의를 열고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건설사들이 담당한 사업장은 유의·부실우려 등급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이번 PF사업성 평가가 영향을 미칠지 채무약정과 책임준공 등에 대한 건설사의 유동성 영향까지 분석했는데 대형 건설사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대형건설사를 제외한 중견건설사 등은 PF우발채무 리스크에 여전히 노출됐다는 평가다. 건설사의 범위를 넓혀도 PF우발채무 규모는 크게 줄어들지 않은 형국이다. 전날 다올투자증권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분기 보고서가 존재하는 건설사의 PF보증 대출잔액은 올해 2분기 기준 40조890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2.3% 감소했다. 책임준공 대출잔액도 100조2620억원에서 99조4520억원으로 1조원이 채 줄지 않는 등 감소세가 미미하다.
특히 자기자본 대비 PF보증 대출잔액 비율이 높은 건설사는 코오롱글로벌(368%)과 금호건설(200%), 태영건설(659%) 등이다. 이 가운데 태영건설은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에 한창이며 코오롱글로벌과 금호건설의 매출액 대비 순현금 비율은 각각 마이너스(-) 31%, 9%다.
여전한 PF 우발채무 규모와 달리 건설사의 현금흐름은 좋지 못하다. 분기보고서가 존재하는 건설사 다수가 순현금 기조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전체 순현금은 올해 2분기 기준 마이너스(-) 20조330억원으로 지난해 말 13조8600억원 대비 7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박영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부채비율이 양호하거나 신용등급이 높은 경우에 자금을 조달해서 대응할 수 있으나 2022년 하반기와 유사한 시장 환경에서는 단기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앞서 기업회생을 신청한 건설사 다수가 부채비율이나 유동비율 등이 양호하더라도 단기 현금 유동성 대응에 실패했고 그러한 회사들 상당수가 절대 현금 보유량이 낮았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일반적인 부채비율, 유동비율 등의 재무지표 외에도 현금 확보의 수준을 동시에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우발부채가 정점 대비 감소하는 분위기가 있으나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지 않고 책임준공 규모도 여전히 커서 현금 흐름 관련모니터링이 아직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