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오른쪽)과 우치다 마코토 닛산자동차 사장(왼쪽)이 지난 3월15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연합(AP))
혼다와 닛산의 합병 논의가 본격화되며 현대자동차그룹 등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합병이 성사되면 현대차그룹은 세계 3위에서 4위로 밀려나고,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친환경차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어서 그 파장이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혼다·닛산이 합병하게 되면 “현대차·기아에 하이브리드차뿐 아니라 전기차까지 경쟁을 벌일 수 있어 쉽지않은 상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혼다·닛산 합병 시 현대차그룹 제치고 3위 올라
19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혼다와 닛산이 합병 논의에 착수했다. 혼다와 닛산은 판매량 규모로 세계 7, 8위 완성차 기업이지만, 이 둘이 합쳐지면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단숨에 3위에 오르게 된다.
현재 글로벌 완성차 3위는 지난해 730만대를 판매한 현대차그룹이다. 같은 기간 혼다와 닛산은 각각 398만대, 337만대를 판매했다. 두 회사가 합병 시 735만대 판매량으로 현대차그룹보다 앞선다.
혼다와 닛산은 전 세계 완성차 시장에서 전동화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합병이라는 선택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기술과 자원 공유를 통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혼다는 1948년 일본에서 설립돼 자동차뿐 아니라 오토바이 등 다양한 모빌리티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하이브리드 기술과 소형차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대표 차종으로는 어코드와 시빅, CR-V가 있다.
닛산은 1933년 일본에서 설립해 글로벌 시장에서 프랑스 르노그룹과 얼라이언스를 구축한 경험을 통해 전 세계 판매망을 갖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리프’로 선두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간 혼다와 닛산은 2020년 이후 주력 시장이었던 유럽과 중국에서 BYD(비야디) 등에 밀려 부진을 겪었다. 한국에서도 닛산 코리아가 철수하기도 했다. 이제 양사가 힘을 합쳐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미래 모빌리티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 현대차 투트랙 전략에 위협…혼다, 美 하이브리드차 판매 앞서
혼다와 닛산의 합병은 현대차그룹에겐 위협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기아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판매량이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미국 등 세계 완성차 시장에선 얘기가 다르다.
특히 혼다와 닛산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서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속에서 하이브리드차 판매 늘리기라는 투트랙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혼다와 닛산 모두 하이브리드차 기술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며 “합병이 가시화될 경우 R&D 협력이 이루어져 더 효율적이고 가격 경쟁력 있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 내 하이브리드차 시장 점유율은 혼다가 현대차·기아를 앞선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올해 1~10월 미국 내 하이브리드차량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34% 이상 늘어난 약 127만대다. 점유율로는 토요타가 58%로 1위, 혼다(19%) 2위, 포드(12%) 3위, 현대차·기아(11%)가 4위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전기차 전용 신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을 가졌다. (왼쪽 3번째부터) 장재훈 현대차 사장, 조태용 주미대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의 메타플랜트 전기차 전용 공장을 올해 10월부터 시운전에 돌입한 가운데, 전기차 캐즘 탓에 하이브리드차 혼류 생산을 결정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 내정자도 지난 8월 컨퍼런스콜에서 “메타플랜트 최대 생산 능력인 50만대의 약 3분의 1까지 하이브리드가 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합산 친환경차 판매량은 3만552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7.5% 늘었다. 이 중 하이브리드차는 지난해보다 85.8% 증가한 2만4296대를 기록해, 역대 최다 판매량을 갈아치웠다.
■ 혼다·닛산, 8월부터 맞손…“中 견제 전기차 기술력 향상 위한 합병 논의”
두 회사는 이미 올해 3월부터 논의를 시작해 8월부터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 회사는 중국의 닛산 인수를 막고 일본 기업끼리 힘을 합쳐 향후 전기차 기술력을 끌어올리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혼다와 닛산은 이미 올해 8월부터 파트너십을 맺고 부품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활용하기로 했다”면서 “양사가 합병을 한다면 브랜드 가치가 둘 다 높기 때문에 현대차·기아와 같이 브랜드가 양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원장은 “양사의 합병은 현대차·기아가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위협 정도는 아니어도 경쟁하기에 버거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혼다는 이미 미국 등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닛산의 경우도 리프 전기차를 지금은 양산하고 있지 않지만 전기차 선두주자였던 만큼 관련 기술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전기차가 아무리 캐즘이라도 유럽의 환경 규제와 2035년까지 전기차로 전환하는 정책을 세운 만큼 하이브리드차에서 전기차로 반드시 옮겨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혼다와 닛산의 합병 논의는 중국 전기차를 견제하고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구상으로 볼 수 있다”며 “혼다와 닛산의 전기차 모터 기술은 세계 선두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이브리드차 시장은 길어야 앞으로 10년이고 그 이후에는 전기차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양사의 합병은 부품 등을 공유하는 등 비용 부분에서 절감하면서도 닛산이 폭스콘 등 중국에 팔리는 일이 없도록 막고 일본 기업끼리 뭉쳐서 전기차 기술력을 끌어올리려는 구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