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급비상훈련 (사진=한국전력)

■ 경제성과 환경 문제 사이 대립···여전히 진행중

정부가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정치적 논쟁 속에 뒤늦게 확정됐다. 하지만 에너지 믹스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둘러싼 경제성과 환경 문제에 대한 대립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전기요금 인상과 산업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와, 신규 원전 도입이 환경 보호에 역행한다는 주장 사이에서 전력 수급 로드맵이 무탄소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지난달 확정된 전기본은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전력 수급 전망을 다루고 있다. 정부는 2038년 최대 전력 목표 수요를 129.3GW로 설정하고, 이에 맞춰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추가 도입하기로 했다. 대형 원전은 2037년과 2038년에 도입될 예정이며, 설비 용량은 총 2.8GW다. SMR은 2035~2036년 0.7GW 규모로 도입된다.

정부는 당초 4.4GW 규모의 신규 원전 3기를 추가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 2기로 조정했다. 이와 함께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을 2.4GW 추가 확대해 원전 비중을 35.6%에서 35.1%로 낮추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9.1%에서 29.2%로 소폭 늘렸다.

13일 국회도서관 소회실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 원자력과 합리적 에너지믹스' 토론회에서 발제를 진행하고 있는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김진수 교수 (사진=서효림 기자)

■ 대규모 투자 필요한 재생에너지 설비···국부 유출 우려도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원전 1기를 대체하려면 7GW의 태양광 발전설비와 92GWh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 이를 감안하면 전기본에 반영된 태양광 발전설비 2.4GW만으로도 32GWh의 ESS가 추가로 필요하며, 건설 비용은 약 1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원전 1기 건설비용의 2배 수준이며, 태양광과 ESS의 운영 수명(각각 20년, 15년)을 고려하면 총비용은 33조6000억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 또한 전기요금도 매년 3800억원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SMR은 대형 원전의 100분의1 크기로 줄인 원자로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전기 생산량이 적지만, 안전성이 높고, 모듈형 설계로 빠른 설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높은 비용과 기술적 한계로 인해 아직 상용화된 사례가 없다. 미국 뉴스케일파워는 경제성 문제로 SMR 프로젝트를 취소한 바 있으며, 한국도 기술 개발이 선진국에 비해 지연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해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125.9GW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중 태양광은 77.2GW, 풍력은 40.7GW, 기타 재생에너지는 4GW로 구성된다.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량은 33.9GW로, 2038년까지 이를 3.7배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 및 민간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태양광·풍력 발전은 일단 건설하면 연료비가 들지 않지만, 건설비가 많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2038년까지 4배로 늘리려면 공공·민간 차원에서 수백조원으로 추산되는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대규모 개발이 가능해 정부가 역점을 두는 해상풍력의 경우 조달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1GW 단지 건설에 6조∼7조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비용을 외국 기업이 마련하면 당장 정부나 공공 차원의 부담은 적지만 20년간 보조금이 얹어진 높은 가격에 전기를 공급해 이익을 가져가 장기적으로 '국부 유출' 논란이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가 해외 사업자를 포함한 민간 중심으로 급격히 넘어가면서 발전 부문에서 공공 역할이 장기적으로 급속히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핵사고 14년 탈핵-민주주의 행진에 참가한 참석자들 (사진=서효림 기자)

■ 재생에너지 중심 정책 촉구 목소리도

종교단체와 탈핵시민단체는 “11차 전기본은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핵산업계만 대변하는 독소적인 내용이 포함됐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11차 전기본에 담긴 원전 2기 추가 건설과 노후원전 연장 운영에 대해 지적하고, 이에 따라 2038년 SMR을 포함해 총 3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될 것을 우려하며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촉구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를 낮추고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국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고려해 정책을 조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적 색깔을 배제한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전력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