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건설현장 모습 (사진=손기호 기자)


‘건설업계 4월 위기설’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전국 미분양은 7만 가구를 넘겼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공사비 급등, 수주 절벽 등 소위 ‘4대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며 업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긴급 점검회의에 나섰지만, 업계는 “구조 개혁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4월 건설업 위기설에 정부 긴급회의…미분양·공사비 등 4대 악재

2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국토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참석한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에 나섰다. 건설업계는 현재 전방위적인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1~3월) 기준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업체는 총 160곳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34곳 대비 12% 증가한 수치다. 전문건설업체를 포함한 전체 폐업 건수는 630건을 넘어섰다.

이는 2020년 이후 최대치다. 하루 평균 1.8곳의 건설사가 문을 닫는 셈이다. 올해 들어서만 신동아건설, 삼부토건, 대우조선해양건설, 대저건설, 삼정기업, 안강건설, 벽산엔지니어링 등 7개 중견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업계에 따르면,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한 기업들이 다수 포착되며 재무 건전성 악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PF 구조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중소형 건설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분양 수익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PF 대출 상환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부도가 이어지고 있다. PF는 개발사업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수익 실현이 어려워질 경우 부실 위험이 급속도로 커질 수 있다.

2025년 1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현황 그래프. (자료=국토교통부, 그래프=손기호)

이러한 위기는 미분양 적체, PF 부실, 공사비 상승, 수주 감소 등 소위 ‘4대 악재’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진 탓이다.

우선,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미분양 주택은 올 1월 기준 7만2624가구로 전월 대비 3.5% 늘었다. 이 중 지방이 72.8%를 차지하고, 수도권 미분양도 1만9748가구로 16.2% 늘어났다. 특히 준공 후에도 분양되지 않는 악성 미분양은 2만3722가구로, 지난 2013년 10월 이후 11년 4개월 만에 최대치다.

또한 PF 부실도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PF 위험노출액은 210조4000억원, 이 중 부실 우려 여신은 22조9000억원에 달한다. 미분양이 쌓이면서 대출 상환이 어려워지고, PF 관련 미수금은 21조7000억원에서 32조5000억원으로 약 50% 급증했다.

여기에 공사비 상승도 더해져 건설사들의 수익성을 갉아먹었다. 지난 2020년 이후 공사비 지수는 약 30% 올랐다. 이는 환율 급등, 원자재 가격 인상, 인건비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수요 부진으로 인해 분양가 인상 여력이 제한되면서 건설사들의 수익성 악화는 심화되고 있다.

수주 절벽도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민간 발주는 줄고 있고, 공공 발주도 예산 제약과 행정 절차 지연 등으로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금 흐름 악화와 투자 위축, 인력 감축 등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 일자리 급감·지역경제 위축…건설업 위기의 확산

건설업 위기는 고용 시장과 지역 경제에도 심각한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일용직 건설 인력 수는 6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더 심화되는 모습이다. 미분양으로 인해 완공된 단지조차 입주가 이뤄지지 않는 불 꺼진 아파트가 속출하고 지역 슬럼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현장 체감과 괴리가 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긴급 점검회의에서 재정 조기 집행, 지방 미분양 주택 매입, 유동성 공급 확대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지만, 업계에서는 “대책의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분양 주택 매입은 물량 자체가 제한적이고 지방 위주로 집중돼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정부가 제시한 매입가는 시세보다 낮게 책정돼 있어서 건설사 입장에선 오히려 손실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PF 대출 심사도 여전히 엄격하고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자금난을 겪는 중소형 건설사들이 회복의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 “구조개혁이 해법”…일각에선 “전체 위기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전문가들은 건설업계의 위기를 단기 유동성 공급이나 미분양 매입 같은 임시처방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실질적인 구조개혁 없이는 연쇄 도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한 건설정책 연구 관계자는 “PF 중심의 지원이 아닌 건설사의 재무 상태와 부실 가능성에 따라 선별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부동산 PF에 과도한 투자가 집중됐고 이는 구조조정 과정에 들어간 것”이라며 “파산할 기업은 정리하고 우량 사업장은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봤다.

주택산업연구원은 ‘2025년 거시경제 보고서’를 통해 “고환율, 고금리, 공사비 급등, 미분양 적체 등 복합 악재가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구조적 개혁 없이는 연쇄 부도 위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현장에서도 정부 정책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지방 미분양과 PF 책임준공, 공사비, 인건비 부담이 모두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사는 리스크를 일방적으로 건설사에 전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위기 국면을 ‘업계 전체의 위기’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이미 재무구조 개선과 수주 전략 조정, 공공사업 중심 포트폴리오 구성 등 위기 대응 체계를 마련해왔고, 현재의 부실은 중소·지방 업체에 집중돼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