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종시의 한 무순위 아파트 청약에 수천명이 몰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청약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일이 발생했다. 분양가 대비 2억원 이상 저렴한 ‘로또 청약’이자 실거주 의무도 없는 구조여서 투자자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실과 국회 이전설이라는 정치 이슈까지 맞물리며 세종시 부동산 시장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 과열에 대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종 파밀리에 더파크 정문. (사진=네이버 지도)
■ 무순위 청약 하루 연장…청약자 폭주로 시스템 다운
앞서 LH는 지난 24일 세종시 산울동 산울마을 5단지 ‘세종 파밀리에 더파크’의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청약 대상은 전용면적 59㎡형 3가구와 84㎡형 1가구로 총 4가구에 불과했지만, 수천명의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리며 접속이 폭주했다.
이날 청약플러스 시스템은 오전부터 지속적인 접속 오류를 일으켰고 결국 LH는 접수 기한을 하루 연장해 25일까지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청약자가 몰린 이유는 시세 차익.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전용 59㎡가 약 2억8600만원, 전용 84㎡는 4억800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같은 단지 내 실거래가는 각각 5억원, 7억2000만원대로 형성돼 있어 분양가 대비 최대 2억4000만원의 차익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실거주 의무나 전매제한이 없고 재당첨 제한까지 없는 구조로 당첨되면 곧바로 전세를 놓을 수 있는 점도 매력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로 전용 59㎡ 기준 전세 시세는 약 2억2000만원 선. 이 경우 분양가에서 전세금을 뺀 실투자금은 6000만원 수준이며, 단순 수익률만 따져도 연 7%에 달하는 고수익 구조다. 이는 일반적인 정기예금 금리의 2배 이상이며 ‘투자용 청약’으로서의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 세종 집값 90주 만에 반등…정치적 이슈 시장 자극
이번 청약 광풍은 단순히 가격 메리트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대통령실 세종 이전’ 이슈가 심리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국회 세종의사당 개원 기대감, 공공기관 추가 이전 논의 등도 맞물려 시장 분위기가 반전했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달 셋째주 기준 세종시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23% 상승했다. 이는 90주 만의 최대 상승폭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서울은 0.08%, 인천은 보합, 경기는 -0.01%로 나타난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거래량도 급증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세종시 아파트 거래량은 762건으로 전월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매물 수는 감소하고 호가는 높아지는 상황이다. 일부 단지에선 신고가 거래도 등장하고 있다.
정치적 이슈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 세종시의 행정수도 완성론이 부상했을 당시에도 유사한 과열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의가 다시 불붙으며 투자 심리를 부추긴 계기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승 흐름이 실수요에 기반한 건강한 회복이라기보다, 정책 이슈에 편승한 투기적 수요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다시 '정책 테마주'처럼 움직이며, 기대감만으로 가격이 출렁이는 불안정한 투기장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무순위 광풍에 쏠리는 우려…“정책 아닌 실수요가 시장 중심 돼야”
전문가들은 이번 세종시 무순위 청약 열풍이 단지 시세 차익이나 가격 메리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책 이슈에 편승한 단기 투기 수요가 주도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시장 왜곡 우려가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서울·경기권에서도 전매제한 완화 이후 무순위 청약에 수천명이 몰리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무순위 청약이 ‘로또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실수요자는 접근조차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될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시장 반등이 실수요 기반이 아닌 정책 기대 심리에 의존하면 그만큼 불안정한 가격 변동에 노출될 수 있다”며 “지방 핵심 도시를 포함해 무순위 청약 제도의 정비와 청약 시스템의 안정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