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밑까지 따라잡았던 추격. 차오르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몰아치던 TIGER의 습격이 주춤한 모습입니다. 코 앞까지 다가왔던 기회를 놓친 추격자에게 남겨진 것은 허탈감과 한숨 뿐.

불과 1.2%p(24년 12월 9일 기준), 순자산 2조원대까지 좁혀졌던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상장지수펀드(ETF) 점유율 격차가 다시 5%p 가깝게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일격을 위해 한발 더 내딛어야 했던 타이밍에 미래에셋운용 점유율이 되레 3% 가깝게 미끄러진 겁니다.

시장 상황이 한 몫 했습니다. 미국 지수 라인업을 주축삼는 미래에셋자산운용 입장에서 지난 한달여간 트럼프 대통령의 난폭 운전으로 일어난 시장 변동성은 그야말로 재해였습니다. 지난해까지 승승장구했던 미국 시장이 더 이상 완벽한 해답지가 아닐 수 있다는 투자자들 의심이 생겨나면서 탄탄대로일 줄 알았던 TIGER 전술에 변화의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시장의 불안이 가라앉은 지금 TIGER의 기세가 예전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실상 TIGER가 호령했던 서학개미 시장에 KODEX가 침투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3개월간 자금 흐름을 보면 ‘KODEX 미국S&P500’(6352억원)로 유입된 자금이 ‘TIGER미국S&P500’(6060억원)을 앞섭니다. 지난해 1분기말 1조원도 되지 않았던 ‘KODEX 미국S&P500’이 어느새 4조3500억원대로 불어났습니다. 그다지 존재감 없었던 KODEX 나스닥100 ETF 순자산 증가폭(349.14%) 역시 TIGER(162.09%) 대비 두 배를 웃돕니다. 시장에서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선점 효과마저 뚫어버린 삼성운용은 온몸으로 KODEX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 저력을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반면 TIGER의 침투 작전은 여전히 마뜩잖습니다. 미래에셋운용이 KODEX의 ‘심장부’인 레버리지, 인버스 ETF 시장을 뚫기 위해 머리를 맞댄 시간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숱한 고민 끝에 마지막 보루인 수수료 인하 카드까지 만지작 거렸지만 당국이 개입하면서 이마저도 불발됐습니다. 채권형과 파생형 상품 시장 역시 삼성운용으로 기운 무게추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혁신’을 최대 무기로 삼았던 신상품 출시 효과도 예전만 못합니다. 특히 “중국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미래에셋그룹의 ‘인사이트’에 부응코자 최근 ‘TIGER차이나테크TOP10’를 선보였지만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거래 첫날 개인 순매수는 100억원에 그쳤습니다. 그나마도 매수 물량의 상당 규모가 미래에셋증권에서 나왔다는 점은 운용도, 증권도 민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혁신에 대한 갈증이 커지면서 핵심인재 유출에 따른 영향은 아닌지 신경도 쓰입니다.


고비를 넘긴 삼성운용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시장에서도 당분간 삼성운용의 견고한 입지가 깨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삼성그룹의 금융경쟁력강화 TF 출신인 김우석 사장 취임 이후 내부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촘촘합니다. 국내 최초 버퍼형 ETF 출시로 1위로서의 멋스러움까지 챙겼습니다.

물론 방심은 금물입니다. 정글의 긴 세월 속 호랑이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실패를 딛고 끈질기게 도전하는 은근과 끈기이기 때문이죠.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는 TIGER가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비수같은 습격에 나서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