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진입해 자리를 잡는 자가 우위를 점한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반복돼 온 선점효과는 이번에도 예외가 없는 걸까요. 국내를 잡은 ‘KODEX(삼성자산운용)’와 해외를 공략한 ‘TIGER(미래에셋자산운용)’의 엇갈린 선택이 시장 변화와 맞물려 더 뚜렷한 격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과 점유율 2~3%를 사이에 둔 두 라이벌의 팽팽한 경쟁구도에 각 시장에 대한 선점효과가 미칠 영향은 상당한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ETF는 크게 각 시장의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지수형과 섹터주들을 중심으로 투자하는 테마형이 있습니다. 2020년대 코로나 시국을 전후로 시장이 급성장한데는 테마형 ETF 상품들의 영향이 상당했지만 ETF에서 여전한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것은 지수형 상품입니다.
국내 지수형 상품의 경우 ETF 원조격인 삼성자산운용이 2002년 'KODEX200' 상장을 시작으로 'KODEX인버스·레버리지' 등을 무기 삼아 견고한 장벽을 지켜왔습니다. 이들 대표지수형 ETF의 순자산은 여전히 10조원대를 상회하며 압도적 지위를 유지합니다.
반면 미국 대표지수는 미래에셋운용이 2010년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시장입니다. 현재 미국 대표지수 관련 TIGER ETF의 순자산 규모는 12조6050억원. 토탈리턴(TR) 상품 등을 내세운 삼성운용이 뒤늦은 추격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미래에셋운용의 선점효과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입니다.
■ 포인트 하나. 국장 탈출, S&P500으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최근 들어 미국 대표지수 ETF들에 대한 자금 유입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12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TIGER미국S&P500' ETF의 순자산은 전체 ETF 가운데 순자산 3위에 올랐습니다. 상위 5위 가운데 이 상품을 제외한 ETF가 모두 금리형임을 감안한다면 주식형 ETF 기준 최대 규모에 해당하죠.
지난해 말 2조1900억원 규모였던 'TIGER미국S&P500 ETF'는 11일 현재 6조1900억원대로 불어나며 3배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입니다.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TIGER 미국나스닥100 ETF’ 역시 순자산 4조원을 돌파하며 한해동안 1조6700억원 가량 불어났습니다. 덧붙여, 동기간 국내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삼성자산운용의 ‘KODEX200’ 순위는 2위에서 4위로, 순자산이 2조원 이상 줄었다는 점은 대조적인 부분입니다.
이는 국내 증시 부진이 지속되면서 해외 투자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흐름과 맞물려 있습니다. 현재 코스피지수의 연간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인 반면 S&P500지수는 30% 가량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개인의 해외주식 보유 규모가 1500억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 포인트 둘. 연금계좌에 S&P500 담는 개인들
이 상품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주체가 개인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TIGER S&P500’의 연간 순매수 규모를 살펴보면 개인이 외국인(2520억원)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매수세를 형성하면서 연간 1조7040억원 가량 사들였습니다. ‘TIGER나스닥100’ 역시 개인(5955억원)의 매수 규모가 외국인(3809억원)보다 두배 가량 많습니다.
금융투자시장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연금 계좌에서의 존재감도 확실합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11월말 현재 연금계좌(퇴직연금/개인연금) 내 ‘TIGER미국 S&P500’의 잔고는 총 1조365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TIGER미국나스닥100’의 잔고도 1조1165억원 규모로 불어났습니다.
ETF 투자경험층이 늘어나면서 연금 계좌에서 ETF를 활용하는 비중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입니다.
실제 미래에셋증권 개인연금 내 ETF 잔고 비율은 지난 2020년말 14.39%에서 올해 10월말 53.98%까지 급증했고 확정기여(DC)형과 개인퇴직계좌(IRP) 역시 동기간 6.9%에서 33.74%로 5배 가량 불어났습니다. 추가 자금 유입에 대한 기대가 무리가 아닌 이유입니다.
■ 포인트 셋. 시총 상위 '역전 불가'의 법칙
그렇다면 ETF 시장에서 선점효과가 큰 이유는 뭘까요. 이경준 미래에셋자산운용 전략ETF본부장은 “리더십을 가진 ETF가 한번 일정 규모 이상을 확보하게 되면 경쟁사의 어떤 전략에도 쉽게 뒤집히지 않는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시가총액 규모가 큰 상품의 경우 다수의 투자자들이 선택하고 있는 상품임을 증명하는 지표로 작용함으로써 투자층이 추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이는 ‘KODEX200’을 잡기 위해 후발주자들이 선보였던 ‘TIGER200’, ’RISE200’ 등이 모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완패한 경험에서도 증명된 바 있습니다.
그는 “코로나 시기에 유입된 ‘얼리어답터’격의 자금들은 테마형 상품에 집중됐지만 최근 일반 대중들로 투자층이 확대되면서 S&P500처럼 한방향으로 적립식 투자를 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TIGER가 갖고 있는 미국 대표지수형 상품에서의 리더십은 미래에셋운용이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는 데 강력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변화하는 투자 수요에 맞춰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고 상품화함으로써 투자 생태계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미래에셋운용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