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한 정비사업 공사 현장. (사진=손기호 기자)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공사와 발주처가 예기치 못한 설계 변경,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기 지연 등을 이유로 공사비 정산에 실패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비화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비사업, 민간 개발, 공공 인프라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형 건설사들이 줄줄이 소송에 휘말리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결국 협상이 핵심이며, 향후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판례 기반의 공사비 정산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GS건설 ‘메이플자이’ 2571억 소송…서울시 중재도 난항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 서초구 신반포4지구 재건축 단지 ‘메이플자이’다. GS건설은 설계 변경과 물가 인상 등을 이유로 조합에 총 4860억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고, 이 중 2571억원에 대해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법에 공사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7년 체결된 당시 계약 공사비는 약 9000억원이었으나, 현재 총 공사비는 1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입주 예정일은 2025년 6월이지만, 갈등이 장기화되며 입주 차질 우려도 나온다.

서울시는 갈등 완화를 위해 ‘정비사업 갈등관리지원단’을 통해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중재에 나섰지만, 뚜렷한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올해 최대 15곳 이상에서 유사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KT, GS·쌍용·한신·삼성·현대건설까지…공사비 전선 확대

민간 발주처 가운데서는 KT가 공사비 분쟁의 중심에 서 있다. KT는 GS건설, 쌍용건설, 한신공영,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총 5개 건설사와 동시다발적인 공사비를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GS건설은 KT가 발주한 5성급 호텔 ‘안다즈 서울 강남’ 공사에서 설계 변경과 공기 연장을 이유로 98억원을 청구했고, 법원은 GS건설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며 KT가 77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쌍용건설은 KT 판교 신사옥에 대해 171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했으나, KT는 도급 계약서의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들어 이를 거절했다. 이 건은 오는 4월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변론이 열린다.

KT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도 부산 초량 오피스텔 사업을 맡은 한신공영과 140억원을 놓고 법적 분쟁을 진행 중이다.

특히 삼성물산도 과거 안다즈 서울 강남 공사에서 유사한 설계 변경 이슈로 KT와 갈등을 겪었고, 현대건설은 KT 광화문 사옥 리모델링 공사에서 약 3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으나 특약 문제로 분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KT를 둘러싼 공사비 분쟁은 계약 특약 해석, 공기 지연, 설계 변경 등 다양한 쟁점이 얽혀 있다.

■ 삼성물산, 강남권 공사비 증액 논란 일기도…“일부 조합원 반발, 법적 다툼”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삼성물산 신반포15차 재건축 단지 ‘래미안 원펜타스’에서 조합원 일부가 삼성물산에 손실 보전금을 지급하기로 의결한 조합 총회의 결정에 반발에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조합이 임시총회를 열고 삼성물산에 99억원의 손실 보전금을 지급하기로 의결한 데 반발해, 해당 총회 결의의 효력 정지 가처분을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다. ‘신반포15차 환급금 지키기 대책위’라는 이름의 조합원 일부는 “삼성물산이 명확한 공사 내역 없이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며, 조합원당 약 5500만원 규모의 분담금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은 설계 변경과 물가 인상 등을 이유로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사업장은 2020년 최초 도급계약 체결 이후 총 세 차례 공사비가 증액돼 평당 공사비는 571만원에서 687만원까지 상승했고, 전체 공사비는 2400억원에서 2900억원대로 증가했다.

삼성물산 측은 “준공 이후에도 조합과 성실히 협상에 임했고, 조합 역시 시공사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했다.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사비 갈등은 '잠실진주 재건축(잠실 래미안 아이파크)' 사업장에서도 있었다. 삼성물산은 해당 현장에서 2021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에 걸쳐 세 번째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당초 3.3㎡당 510만원이었던 공사비는 약 66% 오른 847만원으로 인상됐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시공 '래미안 원펜타스' 단지. (사진=삼성물산)


■ SK에코플랜트, 복선전철 붕괴 복구비 놓고 정부 상대 소송

공공 인프라 부문에서도 공사비 분쟁은 확산 중이다. 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이 설립한 시행사 스마트레일은 부전-마산 복선전철 공사에서 발생한 터널 붕괴 사고로 인한 지연 손실과 복구비 등을 놓고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스마트레일 측은 “지반 침하에 따른 사고는 불가항력 사유에 해당하며, 협약에 따라 정부가 80%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토부는 “해당 사고는 불가항력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다.

스마트레일은 소멸시효 도래 전 10억원 규모의 1차 청구를 진행했으며, 향후 수천억원대로 소송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있다.

■ 수익성 악화와 공사비 압박…대형사들 매출 목표도 하향

이 같은 소송의 이면에는 대형 건설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자리하고 있다. 상장 건설사 6곳의 2024년 평균 매출 원가율은 92.2%에 달하며, 현대건설(100.6%)과 금호건설(100% 초과)은 적자를 기록했다. GS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도 모두 90%를 넘겼다.

이로 인해 삼성물산(-14.8%), 현대건설(-7.1%), 대우건설(-9.8%), DL이앤씨(-6.2%), GS건설(-2.1%) 등 주요 건설사들은 연초부터 올해 매출 목표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를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 품질이나 납기 문제가 발생하고, 반영하면 조합이나 발주처가 감당하지 못해 사업 자체가 흔들리는 딜레마가 반복된다”고 토로했다.

■ “결국 협상…정부 조정 실효성 낮아, 판례 기준 정산 필요”

정부는 공사비 갈등 완화를 위해 국토부 주도로 ‘정비사업 분쟁조정협의체’를, 서울시는 ‘정비사업 갈등관리지원단’을 운영하며 조정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조정 기구의 실질적인 중재력이 아직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정 싸움은 시간과 비용이 모두 많이 든다. 시공사를 교체한다고 해도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공사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국 시공사와 발주처는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판례나 판결문을 기준으로 어느 수준까지 공사비를 올려야 할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조정 기구는 아직 실효성이 낮은 만큼 현실적으로는 법원의 판례를 기준으로 삼는 정산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