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공공 공사비 현실화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며 건설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낙찰률 상향과 물가 반영 체계 강화 등의 조치가 건설사들의 수익성을 개선할 기회로 작용할지, 아니면 발주 감소와 경쟁 심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위기가 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현대건설은 지난해 23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공사비 현실화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에 건설사들은 공사비 관리 강화, 디지털 전환,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대를 통해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 공공 공사비 현실화, 건설업계에 새로운 기회될까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2월23일 공공 공사비 현실화를 위한 정책 변화를 발표하며 건설업계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했다. 이번 정책의 주요 내용은 낙찰률 인상을 통해 적정 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건설사의 공사비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100억원 이상 공사의 단가심사 기준 완화는 기존에 적용되던 엄격한 공사비 책정을 완화해 실제 공사비에 가까운 수준으로 반영되도록 개선됐다. 이를 통해 건설사들은 저가 수주로 인한 손실 위험을 줄이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불어 설계보상비 지급 절차의 개선은 공사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설계 비용을 적시에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 건설사들의 자금 운용 부담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올해 1월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된 ‘공공 공사비 상승분의 적절한 반영’은 물가 상승과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비용 증가분을 공사비에 즉각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건설사들이 불안정한 원가 구조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민간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면서 민간 자본의 참여를 확대해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민간투자사업 활성화를 위해 인센티브 구조를 재정비하고, 민간 사업자들이 장기적인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로 했다.
2025년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에서는 올해 대체로 건설부문 부진한 흐름이 예상되나, 최근 선행지표개선 등으로 하반기 이후 점차 부진 완화 가능성을 전망했다. 자료는 건설수주 및 건축 착공 현황, 아파트 입주 물량 흐름표. (자료=기획재정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책 변화가 단기적으로는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발주 감소를 초래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건설업계의 구조적 체질 개선과 함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우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 시행 초기에는 공공 발주량의 감소와 과도한 경쟁 심화에 대한 우려가 예상된다”며 “정부와 업계의 협력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현대건설, 23년 만에 ‘영업 적자’…건설업계, 공사비 올라 실적 부진
이달 들어서 건설사들은 지난해 연간 잠정 실적을 발표하고 있는데, 역대급 부진한 성적표를 내고 있다. 해외 건설 등에서 공사비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영업손실 1조2209억원을 기록해 전년(영업이익 7854억원) 대비 적자 전환했다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현대건설이 연간 적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01년 워크아웃 당시 영업손실 3828억원을 낸 것 이후 23년 만이다.
현대건설은 “실적 하락에 대해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사업에서 발생한 손실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과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전 사업장 등에서 공기 지연·설계 변경 등에 따라 1조원 넘는 손실이 발생해 지난해 4분기에 반영했다. 공사비가 급등한 이유도 있다.
같은 날 삼성물산도 전체 사업부문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 성장했지만, 건설부문은 실적이 감소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4%, 3.2% 줄었다.
실적 발표를 앞둔 다른 대형 건설업체들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대부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유안타증권은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 등 4개 상장 건설업체의 지난해 4분기 합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2%, 34%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
■ 공사비 인상, 기회이면서 도전…“대형 건설사 중심 경쟁구도 심화 우려”
이 때문에 공사비 상승은 건설사의 수익성을 개선에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 변화로 원가 상승분이 적절히 반영되며, 프로젝트 당 수익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공공 발주량 감소와 경쟁 심화는 건설사들에게 또 다른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건설사들은 대규모 프로젝트 중심으로 재편된 시장에서 생존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낙찰률 상승은 긍정적이지만, 대형 건설사 중심의 경쟁 구도가 심화돼 소규모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에서는 주요 건설사들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고 한다. 현대건설은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공정 관리와 원가 절감을 도모하고, 원전 및 청정에너지 사업에 적극 투자 중이다. 삼성물산은 스마트 건설 기술을 확대 적용하며,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ENG는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확대와 플랜트 사업 강화로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공공 공사비 현실화는 건설사의 구조적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민자사업 활성화와 디지털 기술 활용 등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시한다고 보지만, 과도한 경쟁과 공사비 상승이 오히려 업계 내 일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정부 정책이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지만, 각 건설사가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 혁신과 효율적 경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