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손해보험사들의 출혈경쟁이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각종 할인특약을 내놓았다가 관리 부실로 손해율이 악화되고 결국 보험료가 인상돼 고스란히 고객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
자동차보험은 자동차를 소유, 사용, 관리하는 동안 발생한 사고에 대해 보상하는 보험이다. 동일한 차량이라고 해도 차량종류, 운전형태, 운전자범위, 가입자의 운전경력, 사고횟수, 교통법규 위반여부 등 가입자 조건에 따라 20~30%의 보험료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마일리지 주행거리 지정, 자녀유무, 안전운전습관, 대중교통이용 등 특약 선택에 따라 할인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수많은 할인특약, 할인 못 받으면 손해
손해보험사들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할인특약을 내놓았다. 각 보험사마다 할인구간이나 할인율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
마일리지(주행거리)특약은 거리별 구간에 따라 차등해 가입자의 주행거리가 적을수록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 계약 후 일정 기간에 자동차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거리와 번호판 등을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면 보험 기간이 끝난 뒤 할인 금액을 환급해 주는 방식이다.
블랙박스 특약은 블랙박스를 장착하기만 해도 3~7.6%%의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KB손보의 대중교통 이용 할인 특약은 최근 3개월간 6~12만원 이상 대중교통비를 쓰면 자동차보험료를 5~8% 깎아주는 상품이다.
삼성화재, KB손보, DB손보의 안전운전(UBI) 할인 특약은 T맵 ‘운전습관’서비스 이용에 동의한 개인용 자동차보험 가입자가 T맵을 켜고 주행시 안전운전 점수에 따라 보험료 5~10%를 할인해 준다.
■ 모럴헤저드, 어디에나 있다?
마일리지특약은 할인을 받으려면 계약 후 일정 기간에 자동차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거리와 번호판 등을 사진으로 찍어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계기판을 조작하거나 다른 차량의 계기판을 찍어 마일리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대중적인 차량의 경우 중고차판매 사이트만 들어가도 손쉽게 계기판 사진을 구할 수 있다. 또 실제 일부 정비업체나 부품 판매업체는 1, 2만원 정도의 비용만 지불하면 계기판을 조작해 준다는 얘기도 있다.
손보사 관계자는 “의외로 계기판 조작이 쉬운데다 마일리지 특약에 가입한 정보가 손보사끼리 공유되는 것도 아니라서 문제가 생겨도 보험사를 1년 단위로 옮겨 다니면서 할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블랙박스 특약은 블랙박스를 장착하기만 해도 2~5%의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헌데 일부 할인을 받을 목적으로 잠시 블랙박스를 장착했다가 떼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보험 가입 시에만 확인을 할 뿐 그 후에는 장착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대중교통 이용 할인 특약 역시 이용하기 쉽다. 차 보험 명의의 신용카드를 배우자나 자녀가 들고 다니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될 일이다.
T맵 주행 및 안전운전 점수에 따라 할인해 주는 안전운전(UBI) 할인 특약도 모럴헤저드의 온상이 되고 있다.
보험 가입을 앞둔 사람이 출장이나 여행을 떠나면서 고속버스를 탄 다음 T맵을 켜는 방식이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꼽힌다. 장시간 원거리 운행을 하면서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고속버스 기사들이다 보니 안전 운행에 익숙한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 영업용 차량을 운행하는 운전자들 사이에선 T맵을 속일 수 있는 앱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다. 이 앱은 운전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안전운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T맵을 속여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실제로는 난폭 운전을 일삼는 사람이라도 손쉽게 안전운전 점수를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 손해율 악화, 결국 보험료 인상
최근 손해보험사들은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자동차보험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할인특약을 쏟아내며 출혈경쟁을 일삼더니 결국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소수의 모럴헤저드보단 다수의 안전운전을 하는 보험소비자들이 할인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모든 상품이나 특약에 있어서 모럴리스크가 아예 없을 수는 없고 일부 리스크가 있다고 전체를 없앨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일이 계기판이나 블랙박스 장착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인력을 동원하는 것도 편의성이나 비용부담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이런 저런 모럴헤저드 사례들을 알고는 있지만 일일이 직접 확인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두고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결국 손보사들도 모럴헤저드를 알면서도 대처하지 못하고 이로 인한 손해율 악화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선의의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객 유치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모럴헤저드를 최소화할 수 있는 관리나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며 “매출지상주의를 버리고 제 살 깎아먹는 출혈경쟁도 그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