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2구역 투시도. (자료=서울시)
한남4구역 수주전에서 패했던 현대건설이 압구정2구역에서 설욕에 나섰다. 총사업비 2조4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재건축 사업에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다시 정면충돌하면서, 양사의 전략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 한남4구역과 마찬가지로 삼성물산은 애플 본사를 설계한 전문가와 손잡고 글로벌 설계 역량을, 현대건설은 브랜드 유산을 전면에 내세워 또 한 번 격돌한다.
■ 압구정2구역, 정비사업 최대 상징…시공사 선정 9월 결판
압구정2구역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오는 6월18일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를 낸 뒤, 9월 말 총회를 통해 최종 시공사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1982년 준공된 신현대아파트 9·11·12차 1924가구를 최고 65층(250m), 2606가구로 재건축하는 프로젝트다.
압구정 일대 6개 구역 중 가장 먼저 추진되는 선도 사업으로, 압구정 전체 재건축 흐름을 좌우할 상징성을 가진 사업지다. 정비 업계는 압구정2구역이 누구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향후 구역별 시공사 구도도 결정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 삼성물산, 노만 포스터와 손잡고 글로벌 설계 제안
삼성물산은 전날(1일) 세계적인 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이끄는 영국의 글로벌 건축설계사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Foster + Partners)’와 협업해 압구정2구역 대안설계를 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노만 포스터는 199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AIA(미국건축가협회) 골드메달, RIBA(영국왕립건축가협회) 로열 골드메달 등을 모두 수상한 세계적 거장이다. 그가 설립한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는 애플 본사인 ‘애플 파크’, 런던 시청사, 홍콩 HSBC 본사, 두바이 ICD 브룩필드 플레이스 등 주요 글로벌 건축물을 설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은 이번 협업을 통해 압구정2구역을 단순한 고급 주거단지를 넘어 ‘글로벌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세계적인 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이끄는?‘포스터 앤드 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설계한 애플 본사(캘리포니아 애플 파크) 건물 일부. (사진=Foster + Partners 홈페이지)
■ 대안설계로 한강 조망 극대화…서울시 기준도 충족
삼성물산은 기존 정비계획을 바탕으로 ▲한강 조망 극대화 ▲정밀한 주거동 배치 ▲단지 내 주요 동선 최적화 등을 포함한 대안설계를 조합 측에 제안할 예정이다. 특히 ‘서울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기준’을 준수하는 선에서 이뤄지는 설계이기 때문에, 사업 지연 없이 완성도 높은 설계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명석 삼성물산 주택사업본부장(부사장)은 “압구정2구역은 대한민국 주거의 정점에 세워질 미래 자산”이라며 “세계가 주목할 글로벌 명작으로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삼성물산은 수주전 돌입에 앞서 압구정2구역 맞은편에 브랜드 홍보공간 ‘압구정 S.Lounge’를 개관했다. 이 공간에서는 자사의 글로벌 초고층 시공 경험을 전시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세계 최고층 건축물인 UAE ‘부르즈 할리파(828m)’, 세계 2위 높이의 ‘말레이시아 메르데카 118(679m)’ 등을 시공한 이력을 갖고 있다.
또한 삼성물산은 강남권의 다른 재건축 수주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고 압구정2구역에만 모든 역량을 쏟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 개포주공6·7단지, 잠실우성1·2·3차 등에서 철수하며 압구정2구역을 사실상 단독 전략지로 설정했다.
지난달 30일에는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주요 5대 시중은행과 전략적 금융 협약을 체결해 조합원 금융 부담 완화를 위한 지원책도 함께 제시했다.
■ 현대건설, ‘압구정 현대’ 상표 출원…브랜드 파워·금융 경쟁력 맞불
그렇다면 현대건설은 어떤 전략을 내세우고 있나. 현대건설은 압구정 현대아파트 14개 단지(6335세대)를 1976년부터 1987년까지 시공한 이력을 통해 이 지역의 ‘원 브랜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텃밭 사수에 나선 것이다. 올해 2월 ‘압구정 현대’, ‘압구정 現代’,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총 4건의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했다.
현대건설의 압구정 2구역 재개발 사업 홍보관 ‘디에이치 갤러리’. (사진=현대건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압구정 현대’는 이미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브랜드 정체성과 역사성을 기반으로, 압구정2구역만큼은 반드시 지켜낸다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특히 현대건설은 지난해부터 가동한 ‘압구정 TFT’를 올해 ‘압구정재건축영업팀’으로 확대 개편하며 조직을 강화했다. 내부적으로도 성수1지구 입찰 참여를 중단하고 압구정2·3구역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상태다.
금융 측면에서는 현대건설도 지난달 29일 하나은행과의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이주비, 중도금, 분담금, 입주 잔금 등 재건축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금융지원 체계를 협의하고 있다. 향후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뿐 아니라 외국계 금융사, 대형 증권사와의 협력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 ‘한남4구역 리턴매치’…압구정2구역이 결정할 판세
지난 1월, 삼성물산은 한남4구역 시공사 선정전에서 현대건설을 꺾고 수주에 성공한 바 있다. 당시에도 삼성물산은 글로벌 설계 역량과 기술력을, 현대건설은 브랜드 헤리티지를 내세웠지만 결과는 삼성의 승리였다.
압구정2구역에서도 유사한 대결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세계적 건축가와의 협업을 앞세운 차별화된 설계를, 현대건설은 압구정과의 오랜 인연과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합은 입찰 공고 이후 제출될 제안서를 기준으로 초고층 시공 역량이나 층간소음·에너지 효율 기술, 외관·조경 설계, 커뮤니티 구성 등을 종합 평가할 예정이다.
압구정2구역은 6개 구역 중 첫 시공사 선정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이 결과는 향후 압구정 전체 재건축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어서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