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이란 익힐 연(?), 익힐 습(習), 사람(날) 생(生)의 한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다. 거듭해서 배우는 사람을 뜻한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꽃피워 찬란히 빛나는 스타가 되는 것. 하지만 정말 특출나거나 운이 좋은 일부를 제외한 다수는 순수했던 믿음에 대한 가혹한 배신과 무한 경쟁이라는 차가운 현실 속 남몰래 눈물 삼키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찬란한 빛 아래 머물고 있기에 더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는 연습생들의 현재를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사진=프로듀스 시리즈 방송 캡처) [뷰어스=곽민구 기자] 연습생들의 현실은 ‘잔혹동화’에 가깝다 최근 연습생들의 기회의 장이 된 Mnet ‘프로듀스’ 시리즈의 새 시즌 ‘프로듀스 X 101’이 2019년 상반기 방송을 목표로 출연자들을 모집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응은 뜨거웠다. 시즌1 아이오아이, 시즌2 워너원, 시즌3 아이즈원까지 ‘프로듀스’ 시리즈를 통해 데뷔한 프로젝트 그룹이 모두 잭팟을 터뜨렸기에 출연을 희망하는 연습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프로듀스’ 시리즈가 이렇게 연이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프로듀스’ 시리즈가 화제의 중심에 설 때마다 그곳에는 ‘연습생들의 눈물’이 있었다. 찬란히 빛나는 스타를 꿈꾸며 ‘빛의 사각’에서 하염없이 연습하고, 두려움에 눈물짓는 연습생들의 사연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화제성을 높여주는 ‘보석’이 되고 있다. 오디션 방송은 마지막 희망을 품고 오디션에 출연한 연습생의 ‘간절한 눈물’, 방송 초반 힘든 역경과 마주하며 흘리는 ‘불안의 눈물’, 힘듦을 이겨내고 목표에 도달해 흘리는 ‘성취의 눈물’, 그리고 탈락자의 아쉬움과 남겨진 자의 미안함이라는 ‘상반된 눈물’까지 매회 빼먹지 않고 방송의 화제성을 위해 ‘연습생의 눈물’이라는 특제 양념을 첨가한다. 그러나 방송이 보여주는 ‘연습생의 눈물’은 잔혹 동화를 미화시킨 동화 정도의 수준이다. 지난 2017년 방송된 소속사가 없는 연습생들을 상대로 했던 Mnet ‘아이돌 학교’를 살펴보면 왜 방송에서 보여주는 ‘연습생의 눈물’이 미화된 동화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사진=Mnet 방송 캡처) 당시 이 프로그램은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한 2500여 명을 한 공간에 불러 첫 실기평가를 치렀다. 단체 군무를 추는 2500명을 심사해 방송에 출연할 40명을 뽑는 시험이었다. 이후 40명의 경쟁이 방송을 탄 후 그들 중 9명만이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으로 데뷔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를 뒤집어 보면 9명의 선발로 인해 31명이 탈락했고, 첫 실기에서 탈락한 2460명은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들러리가 돼야 했다. 또 1차 서류전형에 원서를 냈던 수많은 연습생은 그저 방송의 화제성을 보여주는 숫자 정도로만 표기될 뿐이었다. 대중이 ‘아이돌 학교’를 통해 본 ‘연습생의 눈물’은 수만 명 중 선택된 40명의 눈물이 전부였다. 연습생 100만 명 시대라고 했던가. 문체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대중문화예술 기획업체 1952개(2016년 기준)에 소속된 연습생은 총 1440명이다. 그중 1079명이 가수 지망생인 것으로 집계됐다. 0.1%였다. 그들이 데뷔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미화된 동화’ 속 주인공이라면, 99.9%는 불공정 계약, 성범죄, 검은 유혹에 방치돼 두려움의 눈물을 쏟는 ‘잔혹 동화’의 주인공에 가깝다. (사진=tvN, 채널A 방송 캡처) 트로트 가수 홍진영은 한 방송에서 ‘걸그룹 연습생 시절’ 겪었던 폭행과 폭언을 떠올렸다. 홍진영은 “당시 얼차려를 받던 중 못 버티고 하나둘 픽픽 쓰러지자 매니저가 발로 차기도 했고, 잠도 안 재우고 밤새 노래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구타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시킨 걸 못했을 때 부모님을 언급한 폭언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유소영 역시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 출연해 “자신도 연습생 시절 ‘술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며 “그건 아닌 것 같아 거절했더니 전화로 욕설을 했다”고 연습생 당시 일화를 밝힌 바 있다. 현재도 뉴스에서는 연습생을 상대로 한 성범죄 또는 폭력과 관련된 내용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들춰지는 내용보다 감춰지는 내용이 더 많다는 점이다. 트러블로 인해 자신의 데뷔에 문제가 생길 것을 두려워하는 연습생들의 수는 부지기수다. 또 문제를 자각하지 못한 채 폭력과 폭언에 노출된 이들도 있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여러 번 데뷔가 무산됐지만, 다시 한번 힘을 내 신생 소속사에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연습생 A는 얼마 전 또 한차례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는 “연습생으로 지내며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을 여러 차례 당했다. ‘이번에는 꼭 데뷔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폭행을 당한 후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부모님께 힘겹게 고백을 했는데 소속사에서 부모님께 연락해 ‘데뷔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수백만 원을 받아갔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 너무 화가 나서 고소를 하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소송과 관련해 무지하다 보니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 속을 끓이고 있다”고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영화 종이비행기 스틸컷) 폭언·폭력만큼은 아니지만 ‘스폰서 제안’도 연습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잔혹 동화의 주요 소재다. 스폰서 제안은 연예계 관련 종사자라면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업계에 만연해 있는 문제 중 하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걸그룹보다 연습생을 향한 스폰서 제안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년간 연습생을 해오며 재정적 부족함을 끊임없이 느끼기에 이런 유혹에 더 솔깃해하는 경우가 많고, 스폰서를 제안하는 쪽도 준연예인급 외모에 저렴한 비용, 거절을 당하더라도 세간에 알려질 확률이 낮다는 점에서 연습생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자질 없는 소형 기획사의 문제는 재정 압박이 심해지면 연습생에게 스폰서 제의를 하는 브로커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연습생의 환경과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속사가 돈과 데뷔를 미끼로 해오는 스폰서 제안은 연습생들에게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임이 분명하다. 엔터테인먼트 전속계약 문제 등을 다뤄온 법무법인 예율 최용문 변호사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 먼저 녹취를 하는 게 좋다. 대화 당사자 간 녹음은 위법이 아니기에 녹취를 해놓는다면 위법을 입증할 직접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해당 문제가 언급된 메신저 대화창이 있다면 필수적으로 캡처를 해놓아야 한다. 그 외에도 직접 증거로 채택되긴 어렵지만 피해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일기 등이 있다면 간접증거로써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빛의 사각-연습생] ① 보석이 된 ‘연습생의 눈물’…현실은 ‘잔혹동화’

곽민구 기자 승인 2019.02.08 09:58 | 최종 수정 2138.03.20 00:00 의견 0

‘연습생’이란 익힐 연(?), 익힐 습(習), 사람(날) 생(生)의 한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다. 거듭해서 배우는 사람을 뜻한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꽃피워 찬란히 빛나는 스타가 되는 것. 하지만 정말 특출나거나 운이 좋은 일부를 제외한 다수는 순수했던 믿음에 대한 가혹한 배신과 무한 경쟁이라는 차가운 현실 속 남몰래 눈물 삼키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찬란한 빛 아래 머물고 있기에 더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는 연습생들의 현재를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사진=프로듀스 시리즈 방송 캡처)
(사진=프로듀스 시리즈 방송 캡처)

[뷰어스=곽민구 기자] 연습생들의 현실은 ‘잔혹동화’에 가깝다

최근 연습생들의 기회의 장이 된 Mnet ‘프로듀스’ 시리즈의 새 시즌 ‘프로듀스 X 101’이 2019년 상반기 방송을 목표로 출연자들을 모집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응은 뜨거웠다. 시즌1 아이오아이, 시즌2 워너원, 시즌3 아이즈원까지 ‘프로듀스’ 시리즈를 통해 데뷔한 프로젝트 그룹이 모두 잭팟을 터뜨렸기에 출연을 희망하는 연습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프로듀스’ 시리즈가 이렇게 연이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프로듀스’ 시리즈가 화제의 중심에 설 때마다 그곳에는 ‘연습생들의 눈물’이 있었다. 찬란히 빛나는 스타를 꿈꾸며 ‘빛의 사각’에서 하염없이 연습하고, 두려움에 눈물짓는 연습생들의 사연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화제성을 높여주는 ‘보석’이 되고 있다.

오디션 방송은 마지막 희망을 품고 오디션에 출연한 연습생의 ‘간절한 눈물’, 방송 초반 힘든 역경과 마주하며 흘리는 ‘불안의 눈물’, 힘듦을 이겨내고 목표에 도달해 흘리는 ‘성취의 눈물’, 그리고 탈락자의 아쉬움과 남겨진 자의 미안함이라는 ‘상반된 눈물’까지 매회 빼먹지 않고 방송의 화제성을 위해 ‘연습생의 눈물’이라는 특제 양념을 첨가한다.

그러나 방송이 보여주는 ‘연습생의 눈물’은 잔혹 동화를 미화시킨 동화 정도의 수준이다. 지난 2017년 방송된 소속사가 없는 연습생들을 상대로 했던 Mnet ‘아이돌 학교’를 살펴보면 왜 방송에서 보여주는 ‘연습생의 눈물’이 미화된 동화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사진=Mnet 방송 캡처)
(사진=Mnet 방송 캡처)

당시 이 프로그램은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한 2500여 명을 한 공간에 불러 첫 실기평가를 치렀다. 단체 군무를 추는 2500명을 심사해 방송에 출연할 40명을 뽑는 시험이었다. 이후 40명의 경쟁이 방송을 탄 후 그들 중 9명만이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으로 데뷔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를 뒤집어 보면 9명의 선발로 인해 31명이 탈락했고, 첫 실기에서 탈락한 2460명은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들러리가 돼야 했다. 또 1차 서류전형에 원서를 냈던 수많은 연습생은 그저 방송의 화제성을 보여주는 숫자 정도로만 표기될 뿐이었다. 대중이 ‘아이돌 학교’를 통해 본 ‘연습생의 눈물’은 수만 명 중 선택된 40명의 눈물이 전부였다.

연습생 100만 명 시대라고 했던가. 문체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대중문화예술 기획업체 1952개(2016년 기준)에 소속된 연습생은 총 1440명이다. 그중 1079명이 가수 지망생인 것으로 집계됐다. 0.1%였다. 그들이 데뷔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미화된 동화’ 속 주인공이라면, 99.9%는 불공정 계약, 성범죄, 검은 유혹에 방치돼 두려움의 눈물을 쏟는 ‘잔혹 동화’의 주인공에 가깝다.

(사진=tvN, 채널A 방송 캡처)
(사진=tvN, 채널A 방송 캡처)

트로트 가수 홍진영은 한 방송에서 ‘걸그룹 연습생 시절’ 겪었던 폭행과 폭언을 떠올렸다. 홍진영은 “당시 얼차려를 받던 중 못 버티고 하나둘 픽픽 쓰러지자 매니저가 발로 차기도 했고, 잠도 안 재우고 밤새 노래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구타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시킨 걸 못했을 때 부모님을 언급한 폭언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유소영 역시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 출연해 “자신도 연습생 시절 ‘술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며 “그건 아닌 것 같아 거절했더니 전화로 욕설을 했다”고 연습생 당시 일화를 밝힌 바 있다.

현재도 뉴스에서는 연습생을 상대로 한 성범죄 또는 폭력과 관련된 내용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들춰지는 내용보다 감춰지는 내용이 더 많다는 점이다. 트러블로 인해 자신의 데뷔에 문제가 생길 것을 두려워하는 연습생들의 수는 부지기수다. 또 문제를 자각하지 못한 채 폭력과 폭언에 노출된 이들도 있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여러 번 데뷔가 무산됐지만, 다시 한번 힘을 내 신생 소속사에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연습생 A는 얼마 전 또 한차례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는 “연습생으로 지내며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을 여러 차례 당했다. ‘이번에는 꼭 데뷔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폭행을 당한 후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부모님께 힘겹게 고백을 했는데 소속사에서 부모님께 연락해 ‘데뷔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수백만 원을 받아갔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 너무 화가 나서 고소를 하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소송과 관련해 무지하다 보니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 속을 끓이고 있다”고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영화 종이비행기 스틸컷)
(사진=영화 종이비행기 스틸컷)

폭언·폭력만큼은 아니지만 ‘스폰서 제안’도 연습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잔혹 동화의 주요 소재다. 스폰서 제안은 연예계 관련 종사자라면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업계에 만연해 있는 문제 중 하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걸그룹보다 연습생을 향한 스폰서 제안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년간 연습생을 해오며 재정적 부족함을 끊임없이 느끼기에 이런 유혹에 더 솔깃해하는 경우가 많고, 스폰서를 제안하는 쪽도 준연예인급 외모에 저렴한 비용, 거절을 당하더라도 세간에 알려질 확률이 낮다는 점에서 연습생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자질 없는 소형 기획사의 문제는 재정 압박이 심해지면 연습생에게 스폰서 제의를 하는 브로커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연습생의 환경과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속사가 돈과 데뷔를 미끼로 해오는 스폰서 제안은 연습생들에게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임이 분명하다.

엔터테인먼트 전속계약 문제 등을 다뤄온 법무법인 예율 최용문 변호사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 먼저 녹취를 하는 게 좋다. 대화 당사자 간 녹음은 위법이 아니기에 녹취를 해놓는다면 위법을 입증할 직접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해당 문제가 언급된 메신저 대화창이 있다면 필수적으로 캡처를 해놓아야 한다. 그 외에도 직접 증거로 채택되긴 어렵지만 피해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일기 등이 있다면 간접증거로써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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