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방송작가유니온
“방송 환경은 개선되고 있는데 우리는 더 열악해지고 있어”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에 따라 일의 균형과 삶의 질적 수준을 맞추는 것이 우선시되며 누구나 ‘행복’에 가까워지기를 꿈꾼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빈익빈 부익부처럼 좋은 변화는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등의 중심부 직군에게만 혜택이 적용되고 열악한 환경에 놓인 직군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 삶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앞서 방송작가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 불안, 임금 체불, 방송사의 갑질 등의 환경에 놓여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최저임금법 제정, 표준집필계약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가 방송가에 적용됐지만,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주52시간 근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고 여전히 그들을 괴롭히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가 계속되고 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이와 같은 처우개선을 위해 2017년 출범했다. 고용안정과 노동권 보장, 원고료 현실화를 위한 기획사업, 방송계 불공정관행을 없애기 위한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이미지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언론 인터뷰나 강연 등에서 방송작가는 왜 프리랜서가 된 거냐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그 답을 찾지 못했다. 1960년대 드라마 극본 작가가 국내 방송작가의 태동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때는 프리랜서나 정규직 등이 개념이 없던 시대였다. 1980년대 후반 아시안게임 올림픽 유치로 방송계가 폭풍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성 프리랜서 TV구성작가가 방송사마다 알음알음 늘어났다. 이런 상황이 왜 고착화됐을까 유추해보면 공교롭게도 여성이 대다수라서 아닐까 싶다”며 “또 PD들이 원고료를 낮출 시도를 할 때 ‘남편 잘 버니까 이 정도 받아도 되지?’ ‘작가는 자아실현 하려고 일하는 거잖아’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과거 얘기가 아니다. 현재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 작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행이 변하지 않은 이유로는 방송사의 갑질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 지부장은 “그동안 작가들이 이 같은 방송사의 갑질에 대응하지 못했던 건 임금과 채용 결정권이 PD에게 있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했다간 심지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진=방송작가유니온
김순미 사무국장은 “작가를 쓰고 버리는 게 흔하다. 해고할 때는 구체적인 이유가 없다. ‘시청률이 안 나온다’ ‘일 못한다’라는 게 끝이다. 그렇게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는 일이 흔하다”고 덧붙였다.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인 17년 차 작가 D씨는 “PD 결정으로 고용이 되는 관계에서 불편한 소리를 할 수 있겠나. 그런 말을 하는 것보다 동화되는 게 편했던 거다.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팀은 괜찮아. 그게 하나하나 덮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을 거 같아서 이렇게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방송작가의 정규직화를 원하는 건 아니다. 이 지부장은 “성희롱 등의 피해사례는 많이 줄었다. 그러나 불공정 관행의 큰 줄기 자체는 아직 변함없다. 임의로 언제든 쉽게 쓰고 버리는 관행은 그대로라 서면계약서가 도입됐어도 불공정 관행을 완화·개선시키는 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며 “방송작가노조가 모든 방송작가를 정규직 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다. 근로자성이 높은 방송작가의 경우 ‘프리랜서’라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근로자로 취급하고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방송작가유니온이 꿈꾸는 것은 고용 안전과, 원고료의 현실화, 불합리한 관행들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 지부장은 “방송작가 특성상 방송작가를 하나의 직군으로 묶는 건 어렵다. 방송작가 중에는 누가 봐도 프리랜서인 작가가 있는 반면, 노동자성이 대단히 높은 작가도 있다. 수억 버는 작가도 있지만, 최저임금 미만의 저임금에 시달리는 작가도 있다. 그래서 방송작가노조는 부당해고 등을 막는 조항이 담긴 서면계약서를 모든 작가가 체결하는 관행 조성을 위해 애쓰고 있다. 특히 막내 작가들에게는 근로계약서를 쓰는 환경이 체결되어야 한다”며 “또 프리랜서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과 원고료 지급 규정을 정비하고 원고료를 현실화하는 것, 그래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불합리한 관행들을 바꿔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