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서 열린 정몽원 HL그룹 회장의 차녀 정지수 씨와 백지연 전 앵커의 외아들 강인찬 씨의 결혼식에 현대가 인물들이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원 HL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2023.6.2(자료=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총 88곳이다. 이 가운데 범 현대가(現代家) 기업집단은 현대자동차(3위), HD현대(8위), 현대백화점(24위), HDC(31위), KCC(37위), 현대해상화재보험(68위) 등 6곳이다. 이들 기업집단의 계열사 수는 현대자동차 70개를 포함, 총 188개에 달한다. 188개 회사 중 금융 분야로는 카드, 캐피탈, 증권, 손해보험, 자산운용 등이 있다. 은행과 생명보험을 뺀 거의 전 분야를 커버 중이다. 하지만 기업집단별로 들여다보면 양상이 조금 다르다. 카드, 캐피탈, 증권은 현대차그룹(정의선)이, 손해보험과 자산운용은 현대해상(정몽윤)이 영위 중인데 두 사람은 3촌 관계다. 정몽구 회장이 회사를 경영할 때는 2촌(형제)간이었지만 정의선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에는 3촌으로 멀어졌다. 정몽윤 회장의 아들 정경선 씨가 현대해상의 경영권을 승계할 경우 4촌으로 관계는 하나 더 벌어진다. 물에 떨어진 잉크 방울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지만 옅어지게 마련. 범 현대가 특유의 유대관계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옅어질 수밖에 없다. 그룹 안팎의 예상대로 현대카드·커머셜이 계열 분리될 경우 현대차그룹(캐피탈-증권)을 중심으로 카드(정태영-정명이)와 손해보험(정몽윤-정경선)이 서로 협력하는 삼각 구도가 그려진다. 다만, 협력하더라도 대등한 관계로 보긴 어렵다. 현대차그룹은 협력관계가 깨져도 생존에 큰 지장이 없는 반면, 다른 두 그룹은 그렇지 못해서다. 관계가 대등해지려면 현대차그룹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도 독자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해상은 현대카드의 좋은 본보기다. 그룹으로부터 분리·독립 이후 탄탄하게 성장한 선배 법인이어서다. 작년 말 기준 6조7100억원의 자산과 13개의 계열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 카드-캐피탈-보험 3각 구도 그려질까 손해보험사인 현대해상은 25년 전인 1999년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계열 분리의 계기는 외부요인인 1997년 외환위기다. 재벌들의 과도한 부채로 은행들이 연달아 문을 닫으면서 금산분리(금융-산업 분리) 압박에 등 떠밀려 독립했다. 현대해상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7남인 정몽윤 회장이 22%의 지분을 가져 최대주주다. 정 회장 외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는 국민연금(10%)이 유일하다. 자사주(12.3%)까지 포함하면 지분이 50%에 육박, 안정적인 지분 구조를 갖췄다.(현대카드가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일 것이다.) 자의보다는 타의로, 게다가 그룹과의 연결고리 차단 차원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현대해상은 일찌감치 그룹 도움 없이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내 여건상 산업자본이 금융을 넘보긴 쉬워도 금융자본이 산업을 넘보긴 어렵다. 현대해상 역시 금융업 내에서 영토 확장을 꾀하는 전략을 펼쳐 왔다. 흥미로운 점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해외 진출에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미국,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을 세웠고 일본, 영국, 독일, 인도 등지에는 지사와 사무소를 뒀다. 특히 일본의 경우 1976년 한국 보험업계 최초로 영업을 개시해 50여년 경험이 축적됐다. 덕분에 현재 주요 고객은 일본 기업들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에서 현지화에 성공한 드문 케이스다. 미국의 경우 보험 판매보다는 투자 노하우 획득 쪽에 초점을 맞췄다. 보험업은 안정적인 자산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지점(1994년 설립)과 별도로 투자법인을 2006년 세운 이유다. 선진 투자기법을 배워 자산운용의 전문성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뒀다. 신성장 동력은 중국과 베트남, 인도에서 확보하고자 했다. 중국 쪽은 삐끗했지만 베트남과 인도는 순항 중이다. ■ 계열 분리 25년 선배 '현대해상' 영업, 투자, 중개 등 해외 포트폴리오 구축과 함께 국내에선 자산운용사 설립을 통해 미래를 준비했다. 2000년 설립된 현대해상투자자문을 2007년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으로 전환시켰다. 20년 가까운 영업 기간 동안 조금씩 성장해 작년말 기준 약 19조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다만, 3년째 연간 순이익이 100억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장내 존재감은 미미한 편이다. 이에 국내 확실한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일찍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대해상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 첫 번째 인가에 맞춰 ‘I-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금융권에서는 기업은행, NH투자증권, 웰컴저축은행 등이, 비금융권에서는 인터파크, SK텔레콤, GS홈쇼핑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카카오뱅크와 K-뱅크만 최종 관문을 통과하고 ‘I-뱅크’는 고배를 마셨다. 2019년에는 ‘토스뱅크’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했지만 주주 구성에 합을 맞추지 못해 불참으로 돌아섰다. 현재는 ‘유뱅크(U-Bank)’로 제4인터넷전문은행 도전에 나섰다. 렌딧, 루닛, 트래블월렛, 자비스앤빌런즈 등과 연합했는데 대부분 신생 핀테크 기업들이다. 이는 정몽윤 회장의 장남 정경선 전무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정 전무는 2012년 사회적기업 ‘루트임팩트’를 설립한 이후 해당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 왔다. 아버지도 아들의 비영리 사회혁신가 활동을 적극 지지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올해 1월 현대해상 전무로 선임되면서 비영리 분야의 커리어는 끊겼다. 하지만 회사의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로서 인터넷전문은행 진출 업무를 맡아 자신의 커리어와 인맥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한 관계자는 “작년 초 대통령의 ‘은행 공공재’ 발언 이후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 가능성이 커졌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약간 바뀌는 흐름”이라며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 이뤄졌고 시중은행들의 이익도 정점을 지나는 상황이어서 금융당국이 제4인터넷은행 인가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유뱅크, KCD뱅크, 소소뱅크, 더존뱅크 등 출사표를 던진 컨소시엄만 4곳이나 실제 인가는 1~2곳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대해상의 신사업 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현대카드와 현대해상은 다르다 현대해상이 걸어왔고 현재 걷고 있는 길은 분리·독립을 준비 중인 현대카드·커머셜이 분명 주목할 만한 길이다. 보험업과 여신전문금융업은 성격이 다르지만 영토 확장의 매커니즘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최근 시장에서 현대커머셜의 자산운용업 진출 뉴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앞서 현대해상은 국내 사업의 경우 ‘디지털’과 ‘자산운용’에 방점을 찍었는데 현대카드·커머셜도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현대카드·커머셜의 경우 아직은 현대차그룹에 묶여 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현대해상의 경우 손해보험 성격상 자동차보험이 한 축이긴 하지만 해상, 책임, 근재, 상해 등 범 현대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보험 전반을 다루고 있는 기업금융 전문회사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며 “현대카드와는 여러 모로 상황이 다르다”고 전했다. 영토 확장의 기본 조건은 본업에서의 경쟁력 확보인데 현대카드의 경우 현대해상과 달리 경영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만약 현대카드·커머셜이 분리·독립하더라도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고객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본들 실익이 없을 수 있다. 현대해상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만, 시간이 흘러 유대관계가 옅어질수록 보다 좋은 조건의 유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3세 경영권 승계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4세 경영권 승계는 더 복잡한 퍼즐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삼성의 이재용 회장은 4세 승계는 없다고 선언했다. 아직은 다소 먼 훗날 얘기일 수 있지만 만약 전문경영인 체제가 선택된다면 이익 앞에 핏줄은 더이상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의미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자동차, 중공업, 건설 등을 영위하는 현대가 경영인들에게 금융 분야는 중심보다는 외곽, 변방에 가깝다”며 “현대차그룹이 자산운용사 등 다른 금융 분야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어디까지나 목적보다는 수단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해상은 1999년 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해외 진출에 공을 들였다. 미국,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을 세웠고 일본, 영국, 독일, 인도 등지에는 지사와 사무소를 뒀다. 특히 일본의 경우 현지화에 성공해 일본 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자료=현대해상) 한국 경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낳았다. 거친 풍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재벌이지만 ‘부의 대물림’ 시기만큼은 이들도 예외다. 그들이 갈라서고 쪼개질 때 나라 경제가 휘청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가 금융 계열사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결정타가 된 적도 여러 번이다. 자본과 금융시장 역할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요즘, 재벌가의 숨은 조력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던 금융 계열사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대한민국 대표 재벌 중 하나인 현대차그룹의 금융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현대차와 금융⑦-끝] 현대해상이 현대카드 미래다?

형제에서 4촌으로, 범 현대가 옅어지는 유대관계
현대카드, 25년전 계열분리 현대해상 잘 살펴야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시 핏줄보단 이익 '각자도생'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6.10 14:00 | 최종 수정 2024.06.10 14:03 의견 0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서 열린 정몽원 HL그룹 회장의 차녀 정지수 씨와 백지연 전 앵커의 외아들 강인찬 씨의 결혼식에 현대가 인물들이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원 HL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2023.6.2(자료=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총 88곳이다. 이 가운데 범 현대가(現代家) 기업집단은 현대자동차(3위), HD현대(8위), 현대백화점(24위), HDC(31위), KCC(37위), 현대해상화재보험(68위) 등 6곳이다. 이들 기업집단의 계열사 수는 현대자동차 70개를 포함, 총 188개에 달한다. 188개 회사 중 금융 분야로는 카드, 캐피탈, 증권, 손해보험, 자산운용 등이 있다. 은행과 생명보험을 뺀 거의 전 분야를 커버 중이다.

하지만 기업집단별로 들여다보면 양상이 조금 다르다. 카드, 캐피탈, 증권은 현대차그룹(정의선)이, 손해보험과 자산운용은 현대해상(정몽윤)이 영위 중인데 두 사람은 3촌 관계다. 정몽구 회장이 회사를 경영할 때는 2촌(형제)간이었지만 정의선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에는 3촌으로 멀어졌다. 정몽윤 회장의 아들 정경선 씨가 현대해상의 경영권을 승계할 경우 4촌으로 관계는 하나 더 벌어진다. 물에 떨어진 잉크 방울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지만 옅어지게 마련. 범 현대가 특유의 유대관계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옅어질 수밖에 없다.

그룹 안팎의 예상대로 현대카드·커머셜이 계열 분리될 경우 현대차그룹(캐피탈-증권)을 중심으로 카드(정태영-정명이)와 손해보험(정몽윤-정경선)이 서로 협력하는 삼각 구도가 그려진다. 다만, 협력하더라도 대등한 관계로 보긴 어렵다. 현대차그룹은 협력관계가 깨져도 생존에 큰 지장이 없는 반면, 다른 두 그룹은 그렇지 못해서다. 관계가 대등해지려면 현대차그룹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도 독자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해상은 현대카드의 좋은 본보기다. 그룹으로부터 분리·독립 이후 탄탄하게 성장한 선배 법인이어서다. 작년 말 기준 6조7100억원의 자산과 13개의 계열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 카드-캐피탈-보험 3각 구도 그려질까

손해보험사인 현대해상은 25년 전인 1999년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계열 분리의 계기는 외부요인인 1997년 외환위기다. 재벌들의 과도한 부채로 은행들이 연달아 문을 닫으면서 금산분리(금융-산업 분리) 압박에 등 떠밀려 독립했다.

현대해상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7남인 정몽윤 회장이 22%의 지분을 가져 최대주주다. 정 회장 외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는 국민연금(10%)이 유일하다. 자사주(12.3%)까지 포함하면 지분이 50%에 육박, 안정적인 지분 구조를 갖췄다.(현대카드가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일 것이다.)

자의보다는 타의로, 게다가 그룹과의 연결고리 차단 차원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현대해상은 일찌감치 그룹 도움 없이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내 여건상 산업자본이 금융을 넘보긴 쉬워도 금융자본이 산업을 넘보긴 어렵다. 현대해상 역시 금융업 내에서 영토 확장을 꾀하는 전략을 펼쳐 왔다. 흥미로운 점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해외 진출에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미국,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을 세웠고 일본, 영국, 독일, 인도 등지에는 지사와 사무소를 뒀다.

특히 일본의 경우 1976년 한국 보험업계 최초로 영업을 개시해 50여년 경험이 축적됐다. 덕분에 현재 주요 고객은 일본 기업들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에서 현지화에 성공한 드문 케이스다. 미국의 경우 보험 판매보다는 투자 노하우 획득 쪽에 초점을 맞췄다. 보험업은 안정적인 자산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지점(1994년 설립)과 별도로 투자법인을 2006년 세운 이유다. 선진 투자기법을 배워 자산운용의 전문성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뒀다. 신성장 동력은 중국과 베트남, 인도에서 확보하고자 했다. 중국 쪽은 삐끗했지만 베트남과 인도는 순항 중이다.

■ 계열 분리 25년 선배 '현대해상'

영업, 투자, 중개 등 해외 포트폴리오 구축과 함께 국내에선 자산운용사 설립을 통해 미래를 준비했다. 2000년 설립된 현대해상투자자문을 2007년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으로 전환시켰다. 20년 가까운 영업 기간 동안 조금씩 성장해 작년말 기준 약 19조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다만, 3년째 연간 순이익이 100억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장내 존재감은 미미한 편이다. 이에 국내 확실한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일찍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대해상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 첫 번째 인가에 맞춰 ‘I-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금융권에서는 기업은행, NH투자증권, 웰컴저축은행 등이, 비금융권에서는 인터파크, SK텔레콤, GS홈쇼핑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카카오뱅크와 K-뱅크만 최종 관문을 통과하고 ‘I-뱅크’는 고배를 마셨다. 2019년에는 ‘토스뱅크’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했지만 주주 구성에 합을 맞추지 못해 불참으로 돌아섰다.

현재는 ‘유뱅크(U-Bank)’로 제4인터넷전문은행 도전에 나섰다. 렌딧, 루닛, 트래블월렛, 자비스앤빌런즈 등과 연합했는데 대부분 신생 핀테크 기업들이다. 이는 정몽윤 회장의 장남 정경선 전무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정 전무는 2012년 사회적기업 ‘루트임팩트’를 설립한 이후 해당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 왔다. 아버지도 아들의 비영리 사회혁신가 활동을 적극 지지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올해 1월 현대해상 전무로 선임되면서 비영리 분야의 커리어는 끊겼다. 하지만 회사의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로서 인터넷전문은행 진출 업무를 맡아 자신의 커리어와 인맥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한 관계자는 “작년 초 대통령의 ‘은행 공공재’ 발언 이후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 가능성이 커졌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약간 바뀌는 흐름”이라며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 이뤄졌고 시중은행들의 이익도 정점을 지나는 상황이어서 금융당국이 제4인터넷은행 인가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유뱅크, KCD뱅크, 소소뱅크, 더존뱅크 등 출사표를 던진 컨소시엄만 4곳이나 실제 인가는 1~2곳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대해상의 신사업 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현대카드와 현대해상은 다르다

현대해상이 걸어왔고 현재 걷고 있는 길은 분리·독립을 준비 중인 현대카드·커머셜이 분명 주목할 만한 길이다. 보험업과 여신전문금융업은 성격이 다르지만 영토 확장의 매커니즘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최근 시장에서 현대커머셜의 자산운용업 진출 뉴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앞서 현대해상은 국내 사업의 경우 ‘디지털’과 ‘자산운용’에 방점을 찍었는데 현대카드·커머셜도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현대카드·커머셜의 경우 아직은 현대차그룹에 묶여 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현대해상의 경우 손해보험 성격상 자동차보험이 한 축이긴 하지만 해상, 책임, 근재, 상해 등 범 현대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보험 전반을 다루고 있는 기업금융 전문회사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며 “현대카드와는 여러 모로 상황이 다르다”고 전했다. 영토 확장의 기본 조건은 본업에서의 경쟁력 확보인데 현대카드의 경우 현대해상과 달리 경영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만약 현대카드·커머셜이 분리·독립하더라도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고객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본들 실익이 없을 수 있다. 현대해상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만, 시간이 흘러 유대관계가 옅어질수록 보다 좋은 조건의 유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3세 경영권 승계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4세 경영권 승계는 더 복잡한 퍼즐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삼성의 이재용 회장은 4세 승계는 없다고 선언했다. 아직은 다소 먼 훗날 얘기일 수 있지만 만약 전문경영인 체제가 선택된다면 이익 앞에 핏줄은 더이상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의미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자동차, 중공업, 건설 등을 영위하는 현대가 경영인들에게 금융 분야는 중심보다는 외곽, 변방에 가깝다”며 “현대차그룹이 자산운용사 등 다른 금융 분야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어디까지나 목적보다는 수단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해상은 1999년 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해외 진출에 공을 들였다. 미국,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을 세웠고 일본, 영국, 독일, 인도 등지에는 지사와 사무소를 뒀다. 특히 일본의 경우 현지화에 성공해 일본 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자료=현대해상)


한국 경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낳았다. 거친 풍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재벌이지만 ‘부의 대물림’ 시기만큼은 이들도 예외다. 그들이 갈라서고 쪼개질 때 나라 경제가 휘청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가 금융 계열사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결정타가 된 적도 여러 번이다. 자본과 금융시장 역할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요즘, 재벌가의 숨은 조력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던 금융 계열사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대한민국 대표 재벌 중 하나인 현대차그룹의 금융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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