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무기체계 디자인 분야 상호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식' 인사말을 하고 있는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사진=방위사업청)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8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의 방산업체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모두 지정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최종 사업자 결정의 공은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으로 다시 넘어왔다. 애초에 주관 부처인 방사청이 결정을 미루면서 생긴 문제가 사업지연과 업체 간 경쟁 과열, 방사청의 공정성 타격으로 이어졌다.
■ 현대중공업···한전에 뇌물공여 "공기업이라 감점 안돼"
KDDX 사업은 첫 단계인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에서부터 잡음이 나왔다. HD현대중공업(당시 현대중공업)에 밀린 2순위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평가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이의신청을 했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한국전력 뇌물공여에 대한 감점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방사청은 한국전력은 공기업이기 때문에 내부 지침에서 규정하는 '정부기관'에 해당하지 않아 감점 조치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18년 HD현대중공업 직원이 해군본부에서 KDDX와 관련한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이 때 군 장교들의 혐의는 속속 인정됐으나 HD현대중공업 직원에 대한 재판은 늦어졌다. 이들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HD현대중공업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방사청의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이 기존 '군사안보지원사에서 처분 통보 시 최고 1.5점까지 감점'에서 '기소유예 처분 또는 형벌 확정 시'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 KDDX 기밀 훔친 것 맞지만, 입찰에 활용 안했을 가능성 '인정'
법원 역시 방사청과 같은 논리로 HD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었다. '기밀을 훔친 것은 맞지만 입찰에 활용했는지는 모르겠다'는 이유다.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기본설계 우선협상대상자로 내정됐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 중 9명은 2020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져 2022년 11월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 이후에도 방사청은 바로 제재를 할 수 없었다. 판결문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사청은 "후속조치를 검토하기 위해 판결문 열람을 요청했지만 당사자의 공개제한 신청에 따라 판결문을 볼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판결문을 볼 수 없으니 입찰참가제한 등의 제재를 검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던 방사청은 2023년 10월 판결문 입수 이후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어2024년 2월 HD현대중공업에 대해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대표 또는 임원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 같은 방사청의 대응은 두 업체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한편, 공정성 논란을 부추겼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은 다른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까지 불러 일으키며 구설에 올랐다.
■ 특정업체 밀어주기로 공정성 논란, 사업 지연으로 안보 공백 야기
왕정홍 전 방사청장은 2020년 12월 퇴임 후 한 정보기술(IT)업체로부터 방사청과의 알선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왕 전 청장은 KDDX사업 선정 과정을 HD현대중공업에 유리하게 규정을 바꾼 혐의도 받았지만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 석종건 방사청장은 KDDX 사업과 관련한 방송 인터뷰에서 업체의 결과 수용을 강조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방사청의 공정성 회복 노력은 부족했고, 특정 업체에 대한 편향적 태도를 보였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KDDX 사업 착수 시기가 이미 1년 가까이 지연된 상황이다. 전력화 지연 최소화를 위해 신속한 사업 방식이 필요하지만, 방사청의 책임 있는 의사 결정과 명확한 의견 제시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탄핵 정국 속 권한대행 체제에서 방사청의 미온적 태도는 국가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