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갈무리)
“올해 사업계획 작년보다 마이너스로 잡아.” “해외 수주 높이려는데…트럼프 관세가 복병.”
국내 건설사들이 올해 매출 목표를 낮추고, 해외 수주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공사비 급등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구상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수입 관세 강화가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글로벌 연쇄 관세 인상을 촉발하고,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한국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건설사들의 공사비 등 부담이 커질 우려가 나온다. 이에 친환경 에너지, 원자력, 오일가스 등의 경쟁력 확보가 중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 주요 건설사들, 올해 매출 목표 하향 조정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등 주요 5대 건설사의 올해 매출 목표치는 총 75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총 매출(83조1000억원) 대비 약 8조원이 줄었다. 특히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비롯한 대형 건설사들은 연초 사업계획을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설정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올해 매출 목표는 15조9000억원으로, 지난해(18조7000억원)보다 2조8000억원 감소했다. 현대건설도 지난해 32조7000억원 대비 2조3000억원 줄어든 30조4000억원을 목표로 설정했다. 대우건설 역시 전년(10조5000억원) 대비 2조1000억원 줄어든 8조4000억원을 목표로 삼았다. DL이앤씨(7조8000억원)와 GS건설(12조6000억원)도 전년 대비 각각 5000억원, 3000억원가량 매출 목표를 낮췄다.
건설사들의 이 같은 행보는 경기 불확실성과 높은 금리와 공사비 증가, 재건축·재개발 사업 지연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높은 공사비에 수익성이 낮아져 매출에 반영되는 사업장수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건설사 매출은 사업장 수주 후 착공이 시작되면 공사 진행률에 따라 매출에 나눠서 반영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매출은 일반 제조업체와 달리, 수주 후 착공이 시작되면 공사 진행률에 따라 수주액이 매출로 반영된다”며 “주택 착공 물량이 급감하는 등 부동산 시장 침체 분위기가 있어서 매출 목표를 낮추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2년 이후 주택 착공 물량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부동산 성수기였던 2021년 주택 착공 물량은 58만4000가구였지만, 2022년 38만3000가구, 2023년 24만2000가구로 점차 줄었다. 지난해는 30만5331가구로 전년 대비 늘었지만, 이도 공공주택 착공 증가 때문이다. 지난해 공공주택 착공은 5만5670가구로 218% 증가했다. 민간주택 착공은 전년대비 11.1% 늘었다.
■ 올해 수주 목표는 높게 잡아…해외 대형 프로젝트 중심 선별 수주
반면 올해 수주 목표는 높게 잡았다. 건설사들은 국내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해외 수주 확대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는 구상이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은 지난해 신규 수주 실적(87조8000억원)보다 높은 91조4000억원을 올해 수주 목표로 설정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18조420억원의 신규 수주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18조6000억원으로 목표치를 높여 잡았다. 현대건설은 올해 수주 목표를 31조1412억원으로 설정해, 해외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와 에너지·플랜트 사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대우건설과 DL이앤씨도 각각 14조2000억원, 13조2000억원의 수주 목표를 세웠다. 다만 GS건설은 작년 19조9100억원에서 올해 14조3000억원으로 목표액을 낮췄다.
특히 해외 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선별 수주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실적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수주를 늘려 위기를 돌파하려고 한다”며 “해외 대형 프로젝트와 고부가가치 사업을 중심으로 선별적 수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 신규 수주 목표를 전년대비 40% 이상 높인 대우건설은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늘릴 계획이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올해 대우건설은 토목과 플랜트 부문 수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토목은 이라크 알포 해군기지, 리비아 인프라 재건 수주를, 플랜트는 체코 원전과 투르크메니스탄 비료, 나이지라아 인도라마 등의 수주를 앞두고 있다”고 전망했다.
■ 트럼프 행정부 ‘보호무역주의’ 변수…“세계 관세율 압박·국내 금리 상승 우려”
하지만 글로벌 경제 환경과 미국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해외 수주 확대 전략이 계획대로 진행될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을 빚어 해외 수주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의 강경한 대중동 정책이 중동 지역 발주 물량 감소로 이어져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장벽 강화가 한국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철강·알루미늄 25% 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됐다.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지난 2018년 철강제품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은 예외를 적용했던 때와 다른 상황이다.
미국의 관세율 인상이 세계 평균 관세율 인상에 압박이 되면서 글로벌 교역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렇게 되면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에도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관세 강화로 미국 내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 인플레이션 압박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미국 금리 인하 폭이 제한되면서 국내 금리 상승 요인이 되고, 이는 경제 회복과 부동산 수요 증가, 업황 회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도식화하면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관세 강화 → 미국 내 수입 물가 상승 → 인플레이션 압박 → 미국 금리 인하 제한 → 국내 금리 상승 가능성 → 경제 회복 및 부동산 수요 위축 → 업황 회복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구 관계자도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한국 내 건설사의 직접적인 미국 진출이 많지 않더라도, 전반적인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 교역 시장에 다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 고환율·고금리·재개발 지연까지…“친환경·원자력·오일가스 등 경쟁력 확보” 제시
국내 건설업계는 고환율과 고금리 문제까지 겹쳐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환율과 금리가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자재비와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재건축·재개발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주택 공급 감소로 인한 추가적인 리스크도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정부 규제와 인허가 지연이 지속되면서 건설사들의 사업 추진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건설공사 50% 직접시공’ 규제를 폐지하는 등 일부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규제 환경은 여전히 건설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선별적 수주 전략 강화와 비용 절감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국내외 시장의 리스크를 고려한 신중한 수주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건설 업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매출 목표를 보수적으로 설정하고 수주 전략을 보다 신중하게 가져가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국내외 시장에서 다양한 리스크를 고려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훈 해외건설협회 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건설인사이트’를 통해 “올해 건설 업황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외 시장의 리스크를 고려한 신중한 수주 전략이 필요하다”며 “친환경 에너지, 원자력, 오일 앤 가스, 콘테크(Con-tech)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의 진출과 스마트 건설기술 도입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