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1일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계 최대 반도체설계 기업 영국 ARM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음을 공식화했다. 내달 서울에서 ARM 최대주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만나 구체적인 논의에 나선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이 부회장은 영국을 방문한 후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면서 이처럼 밝혔다. 이 부회장은 ARM 인수 관련 질문에 “다음 달 손 회장이 서울로 온다”며 “아마 손 회장이 제안하실 것”이라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짧은 답변을 했지만 삼성전자가 그간 ARM 인수를 위한 물밑작업을 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 75%를 가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손 회장을 만난다는 것은 그간 삼성전자의 ARM 인수 관련 논의가 오고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이 M&A를 직접 언급한 일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앞서 지난해 1월 삼성전자는 2020년 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3년 이내 의미 있는 M&A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발표가 있은 후 2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이 부회장의 이번 ARM 인수 발언은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과도 맞물린다. 지난 2019년 삼성전자는 ‘2030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을 내세웠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를 넘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칩 설계 IP(지적재산) 등 시스템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까지 섭렵해 반도체 사업 분야 전체를 아우르는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에 이 부회장이 ARM 인수에 나선 것은 시스템 반도체 1위 달성의 수순으로 보인다. ARM은 세계 최대 반도체 IP 기업이다. 영국에 본사룰 두고 있는 ARM은 세계 유수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 CPU와 AP 반도체의 IP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세계 모바일기기 반도체 70% 이상이 ARM IP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ARM 반도체 설계 기술이 전력 소모가 적으면서도 처리 속도는 다른 업체 대비 빠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ARM 인수에 대해 국내외 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나섰다가 무산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경쟁당국들은 엔비디아가 ARM까지 인수하면 반도체 시장에서 독점할 수 있다고 우려해 반대했다. 지난 1월25일 블룸버그는 엔비디아가 2020년 10월 ARM 인수를 위해 400억 달러(약 56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경쟁당국의 반대로 인수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에 이 부회장은 반도체 회사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인텔이나 퀄컴,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회사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펫 겔싱어 인텔 CEO가 2022 인텔 투자자 행사에서 웨이퍼를 들고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인텔)
앞서 지난 5월30일 이 부회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방한한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와 서울 서초 사옥에서 만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양사 경영진은 차세대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설계, 위탁 생산을 비롯해 PC와 모바일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컨소시엄 구성은 자금 확보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ARM 50조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현금성 자산이 충분한 삼성전자라도 부담일 수 있다.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이러한 비용 부담을 분담할 수 있다.
한편 영국에서 귀국한 이 부회장은 회장 승진 여부 질문엔 “회사가 잘 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업계에서는 10년 넘게 부회장 자리에 있는 이 부회장이 지난 8월 복권되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회장 승진 가능성을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