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산업의 'R&D' 대표기업 한미약품이 새로운 대항해에 나서고 있다. 선대회장의 '일관된 R&D 경영'으로 이룬 50년 신약개발 선구자 역사를 발판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더욱이 한미약품의 2.0시대를 향한 도전에는 'R&D 열정'이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모양새다.
20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올해 글로벌 권위를 갖춘 유명 학회에서 독자 개발한 후보물질의 다양한 연구결과 40건을 구두 또는 포스터로 발표했다. 올해 발표된 연구들은 항암과 비만대사, 희귀질환 등 주력 분야에서 한미가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들의 핵심 미래가치를 담았다. 발표된 40건 중 한미약품이 25건을 직접 발표했고, 15건은 한미와 협업중인 MSD, 앱토즈 등 파트너사 주도로 공개됐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올해는 한국을 대표하는 R&D 중심 제약기업 답게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 R&D 결과를 많이 알리고 그 역량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는 등 성과가 두드러진 한 해였다"며 "한미의 독보적 R&D 역량이 '세상에 없는 혁신적 신약'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약사에서 신약개발의 선구자로…'최초'의 신화 써낸 창업주
출처=한미약품.
'본업에 충실한 기업', 시장에서 한미약품을 꾸미는 수식어다. 한미약품이 국내 전통제약사 중 가장 탄탄한 본업을 유지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1966년 임질과 매독에 대한 치료약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임성기 약국'에서 시작한 한미약품은 1973년 한미약품공업을 설립한 뒤 2003년 사명을 한미약품으로 바꿔 달았다. 이후 2010년 지주회사 체제 선언에 따라 한미약품은 한미사이언스에서 분리됐다.
100년이 넘는 국내제약기업 역사상 비교적 뒤늦게 합류한 한미약품이 오늘날 한국 제약산업 발전의 역사 그 자체가 된 배경으로는 고(故) 임성기 선대회장의 '일관된 R&D 경영'이 꼽힌다. 창업주는 설립 초기부터 'R&D 없는 제약회사는 죽은 회사', '신약개발은 내 생명', '제약강국을 위한 혁신경영'을 강조했고,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복제한 일명 '제네릭'을 판매하며 회사 성장 기반을 다졌다.
실제 1950년대 완제의약품을 수입판매했던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제약산업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해외 기술도입에 의존한 산업구조를 갖게 됐다. 1970년대 신약 연구개발비가 2억3000만 달러 수준에 그쳤을만큼 국내 제약기업이 신약 개발 역사는 길지 않다. 대표적인 ▲고위험 ▲고수익 ▲장기투자 산업이라서다.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시간만 평균 10.5년, R&D 투자비용은 평균 430억원이란게 업계 설명이다.
수많은 후보물질을 대상으로 수행하지만, 의약품으로 시판되는 비율은 약 0.001~0.0001%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시판 자체를 하지 않는 제품도 있다. 더욱이 글로벌 신약 개발시엔 개발비용은 평균 1조원에서 2조원에 달하고 개발기간은 10~15년이 소요된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선대회장의 'R&D 열정'은 단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신약개발 선구자로써 국내 제약산업의 눈부신 혁신과 발전을 이끈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미약품은 1989년엔 세파계항생제를 합성해 600만달러를 받고 로슈에 기술 수출했고, 1997년엔 면역억제제 '마이크로에멀젼'을 당시 최대 규모인 약 2000억원의 기술 수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후에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개량신약인 '아모디핀', '아모잘탄'을 잇달아 대형 제품으로 키워내며 ▲제네릭 ▲개량신약 ▲복합신약 ▲혁신 신약으로 이어지는 한국형 연구개발 전략을 바탕으로 한미약품그룹을 이끌었다. 특히 2015년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기업과 수조원대의 신약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이후 국내 상위 제약업체를 중심으로 기존 제네릭 위주의 영업에서 탈피해 R&D를 통한 신약개발에 매진하는 추세로 전환된다.
R&D가 궁극적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글로벌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제약업계 전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신약개발이지만, 창업주는 줄곧 한미약품을 신약개발 제약회사로 키우는데 경영방향을 집중해왔고 50년 반세기가 지난 현재 한미약품은 K-바이오의 새길을 여는 나침반이 됐다.
◆ '한국형 R&D 선순환 모델로 복합신약 강자 우뚝
선대회장의 'R&D 열정'은 오늘날 한미약품이 우수한 사업경쟁력을 갖게 된 원동력이 됐다. 매출 상위 품목이 전문의약품 부문의 개량신약 중심으로 구성, 한미약품 영업실적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어서다. 자체 개발한 상품위주로 구성된 매출(제품 매출) 덕분에 한미약품은 55% 수준의 마진율을 보이고 있다. 다국적 제약유통사들로부터 상품을 들여와 국내에 판매(상품 매출)만하는 수입 도매상 역할을 벗어난 영향이다.
구체적으로는 주력 제품인 '로수젯'과 '아모잘탄' 패밀리(단일제 및 복합제)은 각각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의 대형 품목으로 성장하며 전사 외형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작년 1499억원의 처방 매출을 기록한 로수젯은 올해 약 20% 성장하며 11월까지 1628억원 처방 매출을 달성했고, 4종의 '아모잘탄패밀리' 제품군은 올해 11월까지 129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을 동반한 환자들 치료를 위한 4제 복합신약 아모잘탄엑스큐(아모잘탄+로수젯) 처방 매출이 올해 처음으로 1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UBIST 집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올해 11월말까지 8437억 원의 국내원외처방 매출을 달성, 같은 기간 7000억원 이하 매출을 기록한 타사들과 격차를 벌렸다. 앞선 최근 5년동안에도 원외처방 매출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한미약품은 제품 매출을 통해 얻은 수익을 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한국형 R&D 선순환 모델'을 독보적인 경쟁력으로 활용중이다. 지난 2013년 코스피 상장 제약기업 중 최초로 연간 R&D 투자 1000억원을 돌파한 한미약품은 매년 1500~2000억원 가량을 R&D에 투자할만큼 국내 제약업계 중 많은 R&D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기반으로 지속형 바이오신약과 혁신적 표적항암제 등 30여개의 혁신신약 파이프라인을 가동 중이다. 개발분야도 항암, 비만부터 희귀질환까지 다양하다. 9월 기준 한미약품이 보유한 특허권은 총 1298건으로, 올해에만(1~9월까지) 총 114건의 신규 특허를 취득했다.
◆韓 대표 R&D 기업 한미약품의 Next '글로벌 헬스케어 선도 제약사'
출처=한국신용평가.
"이제부터는 지난 50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글로벌 헬스케어 선도 제약사' 위치로 올라서야 한다. R&D와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새 50년의 핵심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창립 기념일 행사에서 밝힌 말이다. 선대 회장의 신념은 한미약품그룹의 DNA로 새겨지며 부인인 송 회장과 2세들을 통해 다져지는 중이다. 2020년 선대회장의 타계 후 바통을 이어받은 일가는 제약강국이란 숙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최근 이들의 밑그림은 구체화되고 있다.
한미약품그룹은 지난 7월 100년 기업을 목표로 중장기 전략을 포함한 신성장동력 육성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미사이언스는 글로벌 혁신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경영 기조를 강화하고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를 통해 오는 2032년 그룹사 합산 매출 5조원을 이루겠단 목표다.
그룹이 발표한 미래 핵심성장 동력 3개 기둥을 살피면, ▲혁신신약 R&D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로 압축된다. R&D 부문에서는 '랩스커버리'를 포함한 지속형 바이오신약과 더불어 세포·유전자(Cell&Gene) 치료제 및 mRNA 기반의 새로운 모달리티1를 토대로 혁신 동력을 확장할 방침이다. 제이브이엠과 북경한미약품, 혁신신약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달성하는 한편 AI와 디지털 빅데이터 분야에 강점이 있는 기업 인수 추진 등으로 헬스케어 시장을 선도할 캐시카우를 만들겠단 복안이다.
핵심 역량인 R&D에 대한 개편도 단행됐다. 그룹은 혁신신약 개발의 요람인 '한미약품 R&D센터'가 질환 타깃을 중심으로 조직을 완전히 개편했다. 그동안 '바이오'와 '합성'으로 이분화됐던 팀을 '질환'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전문기술 융합과 시너지를 극대화해 한미의 미래가치를 높이겠단 경영진 의지가 반영된 구상이란 회사측 설명이다.
특히 미래 먹거리로 '비만' 시장을 낙점한 것이 눈에 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약 출시에 따라 알츠하이머와 비만 치료제는 수요 저변이 확대되는 추세다. 한미약품 역시 이 같은 현황에 따라 지난 10월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 3상 식약처 승인을 받아, 국내 토종 비만치료제를 내놓을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해당 파이프라인 가치를 약 1500억원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도 비만대사 프로젝트인 'H.O.P'를 전담할 '비만대사팀'을 신설하고 비만 예방과 치료, 관리를 아우르는 혁신적 신약들을 빠르게 개발하기로 했다. 단순히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하는 '비만치료'가 아닌 '비만'을 만성질환의 근본 원인으로 정의함으로써 제약기업 본연의 목적인 '인류의 더 나은 삶'을 향한 R&D 행보에 박차를 가하겠단 것이다.
김민정 DS 투자증권 연구원은 "GLP-1은 식욕억제제 대비 높은 안전성을 보유하고 있어 주 1회 제형 공급이 시작될 경우 현재 식욕억제제 시장 침식뿐만 아니라 비만 치료의 구조적 성장을 야기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러한 상황 하에서 2026~2027년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출시 될 경우 한미약품의 실적 개선에 유의미하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