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서울 서초구 본사 전경. (사진=KCC)

KCC가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했다가 소액주주와 시장의 거센 반발 속에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정부와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가운데, KCC가 법제화 전에 유동성 조달과 경영권 방어를 동시에 꾀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삼성물산 등 전략적 자산의 활용 여부를 둘러싼 의문과 함께 자사주 EB 발행을 둘러싼 오너일가와 소액주주의 이해 충돌이 격화됐다. 이번 논란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라는 법적 쟁점까지 부각시키며 지배구조와 주주권 보호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KCC는 이러한 논란을 어떻게 해소할지 주목되고 있다.

■ 9월 자사주 EB 발행 계획과 시장 반발로 철회

KCC는 지난달(9월) 24일 자기주식 활용 방안을 공시하며 전체 발행주식의 17.24%에 해당하는 자사주 중 일부인 3.9%를 소각하고 일부인 3.4%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는 동시에 약 9.9%(88만2300주)를 기초로 EB를 발행하겠다고 공시했다. 당시 KCC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균형 있게 도모하고, 주주 이익환원과 기업가치 제고를 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액주주와 기관 투자자들은 반발했다. 자사주를 EB 발행에 활용하면 단기 자금은 확보할 수 있지만, 교환권 행사 시 대규모 매물이 시장에 풀려 주가 희석과 하락 압력을 불러오기 때문. 증권가에서는 "보유한 금융자산이 충분한데 왜 굳이 자사주를 활용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KCC는 한 주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30일 "주주의 의견과 경영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보다 안정적인 방안을 택하겠다"고 공시하며 자사주 활용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회사는 "투명성과 책임경영을 통해 장기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 3차 상법 개정으로 발등에 불 KCC

이번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올해 7월 시행된 3차 상법 개정 때문이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 전체'로 확대하면서 회사에는 이익이 되더라도 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이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했다.

KCC의 EB 발행은 회사 유동성 확보라는 명분은 있을지라도 주가 희석과 하락으로 소액주주가 피해를 입는다면 충실의무 위반으로 법적 쟁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라이프자산운용은 주주서한에서 "EB 발행이 차입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라면, 자사주보다 저수익 자산을 먼저 활용했어야 한다"며 "삼성물산 지분을 그대로 두고 자사주 EB 발행을 택한 것은 시장 신뢰를 져버린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도 "KCC가 보유한 약 3조3000억원 규모의 삼성물산 주식을 활용하지 않고 자사주 EB 발행을 추진한 것은 투자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이라며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책임이 주주까지 확대된 만큼 향후 더 큰 쟁점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KCC가 이번에 EB 발행 공시 직후 회사 주가는 장중 17% 가까이 급락하기도 했다.

■ 7월에도 반복된 EB 논란…삼성물산 지분, 왜 활용 못하나

KCC의 EB 논란은 올해 들어 반복되고 있다. 상법 개정 시기인 7월에도 KCC가 보유 중이던 HD한국조선해양 지분을 기반으로 8827억원 규모의 EB를 발행했고, 지난달에는 4300억원 규모의 자사주 EB를 시도했으나 소액주주와 기관 투자자의 반발로 철회했다. 증권가에서는 "보유 자산을 직접 매각해 차입금을 줄이는 대신 EB를 선택한 것은 아쉬운 결정"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10.01%, 1700만9518주(약 3조3000억원)이 있다. 이 지분은 지난 2015년 '앨리엇 사태'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 당시 확대된 것이다. 그해 미국계 헤지펀드 앨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자, KCC는 삼성물산 자사주 899만주(5.76%)를 6743억원에 매입하며 백기사 역할을 했다. 그 결과 KCC는 이재용 회장에 이어 삼성물산 2대 주주가 됐다. 이 지분은 현재 KCC 시가총액에 맞먹는 수준이다. 기관투자자 등은 대규모 저수익 자산의 유동화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또한 KCC는 오너일가와 특수관계인 13명이 3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자사주 17.24%를 더해 과반 이상의 우호지분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당정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향후 KCC의 경영권 방어와 삼성물산 지분의 활용 여부가 시장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이기 때문에 지분 매각과 유동화는 KCC와 삼성 모두에게 전략적 위험 요소라는 지적이다.

KCC는 이번 EB 발행 계획을 철회하면서 "회사의 경영환경과 주주 여러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보다 명확하고 안정적인 방향을 택하고자 내린 결정"이라며 "주주의 이익과 시장의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투명성과 책임경영을 통해 장기 성장과 기업가치 향상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KCC의 지배구조 불안과 경영권 방어라는 근본적 과제가 남아 있어 이를 어떻게 해소할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