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아파트 재건축 단지 공사 모습. (자료=연합뉴스)
금융당국이 230조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연착륙을 목표로 부실 사업장 정리 본격화에 나섰다. 사업성 평가 기준을 높이면서 부실 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실상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더불어 사업장 정리 및 재구조화가 필요한 자금은 공공과 민간이 함께 조성하고 PF시장 자금공급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도 확대한다.
건설업계에서는 PF 시장 정상화에 속도를 높인다는 방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가 이뤄지는 만큼 우발채무의 현실화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더불어 단순 금융적 지원책이 아닌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참고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3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사업성 평가 분류를 현재 3단계에서 4단계로 세분화하고 은행·보험권은 PF 구조조정을 위해 최대 5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을 조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사태와 관련 다양한 연착륙 방안을 내놓았지만 고금리·고물가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사업성 낮은 사업장들의 정리가 지연되고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PF대출 연체율이 치솟자 결국 이번에 추가 대책을 내놓게 됐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날 뷰어스와 통화에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전날 발표한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 발표에 대해 "부실한 사업장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 것 같다"면서도 "PF 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건 상황에 대한 단기적인 수습은 되겠으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결국 금리가 내려가거나 분양 시장이 좋아져야 하는데 내년까지 지금 상황이 이어질 경우, 수습 기간 동안 또 다른 부실 사업장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수요 촉진과 함께 정부와 금융권, 건설업계가 머리를 맞댄 패키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융당국의 PF금융시장 안정화 관련 대책이 꼭 필요했다는 데 목소리를 모으면서도 이해조정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소장은 "부실PF의 책임이 시공사에게 다수 몰릴 수 있는 구조도 우려되는 점으로 건설업계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 있는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2022년 하반기부터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포함해 4차례 이상 PF금융시장 안정대책이 나왔으나 보다 명확한 사업 재구조화와 속도감 있는 연착륙이 필요했단 측면에서 이번 PF대책은 상당히 구체적인 방안을 담은 것으로 본다"면서 "현재 본PF 중심으로 구성된 평가기준을 사업장 성격에 따라 브릿지론, 본PF로 구별하여 평가체계를 강화하고, 사업 진행 단계별 위험요인과 그 수준을 세분화‧구체화하여 보다 실효성 있는 사업성 평가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계속해서 "건설, 금융사 등 각 사업주체 이해조정의 어려움이 큰 만큼 정부당국은 사업성 평가 진행의 투명성과 과정 및 결과를 잘 모니터링하고 부동산PF 시장이 연착륙될 수 있도록 면밀하게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실 사업장 정리를 통해 장기적으로 공급 개선이 기대되나 단기적으로 분위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함 랩장은 "고금리‧고물가가 상당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사업성이 극히 낮아 정상적인 사업추진이 어려운 사업장 등 부실자산들은 상당 부분 정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장기적으론 부실자산과 재구조화가 필요한 사업장, 정상 사업장이 각각 분리되며 정상 사업장은 자금공급이 강화되고 공사 착공으로 이어지며 부동산시장의 인허가, 착공 감소 우려를 줄이고 향후 부동산 공급 시장 개선에도 도움을 줄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철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금융당국의 정책은 시장 불안정성 해소와 유동성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방향성 자체는 정부가 목표로 하는 부분에 맞춰서 잘 진행됐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브릿지론 단계에서 손실처리를 금융권이 부담해야 하는 만큼 신규 자금 투입이 잘 이뤄질지가 관건"이라면서 "건설사들도 자금지원에 대한 평가가 타이트해지고 대출이라거나 자금조달 어려움이 있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부실 사업장 정리 이후 시장이 정상화 되면 향후 공급이 늘어나야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의 공사비 인상 속도가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리 자재를 비축한다거나 공사비 관련 협의체 마련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시장에서는 대형 건설사를 제외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건설업계의 우발채무는 현실화될 수 밖에 없다는 예상이 나온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사업성 낮은 지방 사업장 비중이 높은 건설사 위주로 우발채무가 현실화하겠지만 범위를 명확히 하고, 부실사업장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했으며 다수의 주체와 리스크를 분산했다는 점에서 예상 이상의 임팩트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윤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민간사업의 브릿지론 단계 PF 사업장에 제공한 보증을 주요 위험으로 간주할 시 PF 우발채무 리스크는 표면적으로 우려되는 수준"이라면서도 "미착공 사업장 대부분이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된 대형사는 본PF 전환실패 가능성이 낮고 대우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은 자기자본 대비 미착공 PF 규모가 20% 미만, DL이앤씨는 민간 시행사의 PF 보증금액이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부동산PF 사업장 정리와 더불어 향후 관련 사업 규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경험을 계기로 추후 부동산PF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는 정책방향이 어떤 수준으로 현실화되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보다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PF분야의 위험성을 사전적으로 관리하는 것과 특정 분야의 적극적인 기업가정신 등을 제한하는 것을 절충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