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의 한 공사현장.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내년도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안을 두고 건설업계에서 아쉬움이 묻어난 반응이 나온다. 조단위로 줄어든 예산에 내년도 먹거리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우려에서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 유동성 확보에도 애를 먹는 만큼 살림살이와 같은 자산 매각에도 나서고 있다. 마땅한 매각 대상도 없어 유동성을 챙기기 어려운 중소 건설사를 대상으로는 정부의 금융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건설산업연구원과 기획재정부 자료 등에 따르면 내년도 SOC예산안은 올해(26조4000억원) 대비 3.6% 감소한 25조4800억원이다.
정부 전체 예산안(677조4000억원) 중에서 SOC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8% 가량이다. 올해 SOC 예산이 차지한 전체 예산에서의 비율이 4%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비중도 줄었다. 특히 12개의 분야별 재원 배분 현황 중에서 예산이 감소한 부문은 SOC 뿐이다.
SOC예산은 부동산 시장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도로와 철도 공사 등에 활용된다. SOC 예산의 감축이 단순히 건설사의 관련 프로젝트 먹거리만 줄어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부동산 시장 위축까지도 우려될 수 있는 지점이다.
건설업계에서도 아쉬움이 묻어나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달 말에 낸 '건설동향브리핑'을 통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공기업 투자를 모두 합한 SOC 투자의 2025년 예상지출 규모는 57.5조원 내외 수준"이라며 "경제성장률 2.1~2.2% 달성을 위한 적정 SOC 투자 규모의 예상 지출 규모 대비 7000~8000억원 가량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해외 국가들의 SOC 투자 사례 확대를 들면서 "SOC 투자는 국민의 안전과 더불어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한 기반이 되고 경기 선순환 유도에 기여하는 만큼 지속적인 SOC 투자 확대의 도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에도 건산연은 '노화하는 대한민국, SOC 투자의 정책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저출생, 고려화에 따른 지역소멸 위기 및 급성장기 공급된 인프라의 노후화와 더불어 민간투자 여력 감소 등에 대응하기 위해 그 어느 시기보다 공공의 투자와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지속적인 SOC 예산 확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수주 물량 감소를 근심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건설사의 수주액을 전년 대비 10.4% 감소한 170조2000억원으로 내다봤다. 민간 부문 수주가 16.1% 감소하면서 전체적인 하락세를 이끌 것이라는 거다. 이 가운데 공공부문은 0.8% 늘어 수주 물량 감소세를 일정 부분 상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내년도 SOC 예산 감소로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같이 공사비가 오르고 유동성 관련 리스크가 있을 때 그나마 안정적인 게 공공 부문인데 예산이 줄어든다면 그만큼 수주 선택지가 적어지니 아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 확보…중견·중소 건설사는 '폐업' 잇따라
수주 물량 감소가 예측되면서 건설사의 '보릿고개'가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금리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자금줄이 막히게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형 건설사들은 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에코플랜트 지난 9일 9823만 달러(1316억원) 규모의 어센드 엘리먼츠 지분을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어센드엘리먼츠는 미국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전문기업으로 SK애코플랜트가 지난 2022년 6084만달러를 투자해 13.09% 가량의 지분을 매입하며 최대 주주로 올라선 바 있다.
SK에코플랜트는 13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해 재무 안정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GS건설도 다양한 자산 매각을 통한 다양한 유동성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수처리 기업인 자회사 GS이니마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GS건설은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공시를 통해 "GS이니마는 투자자로부터 구매의향 접수 중이나 지분 매각 여부 및 규모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해진 바가 없다"고 알렸다.
더불어 GS엘리베이터의 지분 매각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적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게 GS건설의 입장이다.
태영건설도 최근 여의도 태영빌딩을 2251억원 가량에 매각했다. 태영건설의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가 종합환경기업 에코비트도 2조700억원에 팔았다. 티와이홀딩스는 에코비트의 지분을 50% 보유하고 있어 매각 대금 중 약 1조원 이상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가 가능한 건설사와 달리 여력이 없는 중견·중소 건설사들은 문을 닫는 일이 빈번하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12일 기준)까지 부도난 건설업체(금융결제원이 공시하는 당좌거래정지 건설업체)는 총 22곳이다. 종합건설사가 7곳, 전문건설사가 15곳이다. 이는 지난해 연간 전체 건설업체 부도 수인 21곳을 상회하는 수치다.
정부는 P-CBO(프라이머리 자산담보부 증권) 제도를 운영하면서 신용도가 낮아 기업운영을 위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P-CBO는 신규로 발행되는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자산담보부 증권이다. 중소기업 등이 신규로 발행한 회사채를 증권회사가 인수하고 유동화증권 발행을 목적으로 설립된 SPC(특수법인)에 이를 양도하는 과정을 거친다. SPC는 양도받은 자산을 기초로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의 신용보강을 거쳐 증권을 발행한다.
그러나 건설경기 침체 속에 건설사들은 정부 금융 지원 혜택을 잘 누리지 못한다는 게 건설업계 지적이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보증기금의 P-CBO 유동화 보증 건수는 총 1756건이다. 이가운데 건설기업에 대한 보증은 전체 보증 건수의 10%에 불과한 183건으로 나타났다. 보증금리도 6.47%로 보증 업체 수가 두 개뿐인 예술, 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을 제외한 14개 업종 평균 금리인 6.05%를 웃돈다.
임기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공기업의 건설기업에 대한 낮은 신용평가는 은행 등 금융권의 건설기업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진다"면서 "건설기업의 운영자금 융통과 조달금리에 대한 부담 증가로 연결되며 결국 중소건설사들의 주요 폐업 요인으로 작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P-CBO 제도의 도입 취지가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도 운영 자금의 조달을 원활히 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라면 건설경기의 장기 침체로 부도와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건설기업이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신용보증 기금을 비롯한 여러 정책금융기관의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