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E&S TPD 해상풍력 발전단지 (사진=SK이노 E&S)
대한민국의 전력산업은 단순한 공급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다층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가 전력을 책임지고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2025년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내세우는 전력공급 체계 구상은 단순한 기술이나 요금 정책을 넘어, 국가 운영 철학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이슈다. 공공의 역할과 민간의 참여, 중앙집중과 지역분산 사이에서 전력산업의 미래 방향이 갈리고 있다.
이재명 “지능형 전력망·분산형 시스템… 공공이 방향, 민간이 실행”
이재명 후보는 전력산업을 ‘지역 중심 분산형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각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을 통해 전기를 자가 소비하거나 남는 전력을 판매할 수 있는 '에너지 자립형 마을' 체계가 핵심이다.
그는 지난 4월 30일 연설에서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아 전국 어디서나 태양광, 풍력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자가 소비하며, 남는 것은 팔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에너지 시스템의 민주화이자, 지역균형 발전의 새로운 모델로 해석된다.
이 후보는 민간의 투자를 유도하되, 정부가 설계자 역할을 맡아 공공성을 유지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는 전면적 민영화가 아닌, ‘공공 주도-민간 실행’이라는 절충형 모델이다. 즉, 시장 논리를 일부 수용하되 방향성은 공공이 책임지는 구조다.
김문수, 직접적 언급 없지만…‘민영화 지향’ 정책 기조 뚜렷
김문수 후보는 공식적으로 전력산업 민영화에 대해 구체적인 발언을 내놓지는 않았다. 김 후보는 ‘탈원전 백지화’ 및 원전산업 확대, 기업 중심의 전력수급 체계 개편 등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대형 원전 6기 건설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과거 노동운동가에서 보수 정치인으로 변모한 그의 이력과 공공부문 축소와 민간 확대를 통한 효율성 제고를 추구하는 행보를 고려할 때, 전력 민영화에 우호적이라는 해석은 가능하다.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총장은 “원전과 화력 위주의 공급체계를 해상풍력 등 신재생 중심으로 바꾸는 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남 사무총장은 “다만 신재생 전환이 민간과 해외자본에만 맡겨지면 에너지 주권이 위협받는다. 정부가 주도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해상풍력발전소 건설에 외국계 자본이 참여하는 현 상황을 ‘에너지 안보의 구조적 약화’라며 우려했다.
‘시장’이냐 ‘공공’이냐… 유권자의 선택이 전력 미래 좌우
해상풍력은 태양광보다 출력 밀도가 높고, 국토 제약을 받지 않으며 대규모 단지 조성이 가능해 국내 재생에너지 전환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민간과 해외 자본의 의존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해상풍력 개발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민간 기업 주도이며, 그 중 다수는 외국계 투자자와 컨소시엄 형태로 진행 중이다.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총장은 “풍황 데이터, 송전망 접근권, 해역 사용 권한 등은 국가 전략 자산에 해당한다”며 “이를 민간과 외국 자본에 넘기는 구조는 에너지 주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정부가 주도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력산업은 단순한 시장 논리만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며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 기술 전환기라는 복합적 과제를 감안할 때, 공공성과 효율성 간 균형점이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선택은 유권자에게 달려 있다. 이번 대선의 한 표는 전기요금 수준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구조, 나아가 국가의 경제 운영 철학까지 좌우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