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SK에코플랜트 신임 사장 내정자 (사진=SK에코플랜트)
SK에코플랜트가 김영식 전 SK하이닉스 양산총괄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하며 대대적인 경영 전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룹의 첨단산업 중심 재편 흐름 속에서 건설·환경 중심의 사업구조를 반도체·AI·데이터센터 인프라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기업공개(IPO)와 재무구조 개선, 여기에 회계 중과실과 영업정지 과징금 등 신뢰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김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
■ 삼성도 제쳤던 AI 반도체 HBM4 양산 주도한 '반도체 전문가'
1967년생인 김영식 신임 사장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에 입사해 30여년간 반도체 제조기술 현장을 지켜온 전문가다. 그는 포토기술그룹장, 제조·기술담당, 양산총괄(CPO)을 거치며 HBM(고대역폭메모리) 4세대 제품의 세계 최초 양산체계를 구축한 주역으로 꼽힌다.
그가 주도한 HBM4는 기존 세대(HBM3E)보다 데이터 처리 대역폭을 두 배로 늘리고 전력 효율을 40% 이상 개선했다. 인공지능(AI) 서버와 대형 데이터센터의 고성능, 저전력 수요를 충족시킨 기술 혁신이었다. 또 청주 M15x 공장 착공을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와 고객 맞춤형 생산 체계 도입 등 제조현장의 변화를 이끌며 양산 혁신가로 평가받았다.
반도체 분야에서 잘나가던 그가 SK에코플랜트로 자리를 옮긴 것은 또 다른 혁신을 준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도체 제조의 정밀성과 데이터 기반 관리 방식을 건설과 플랜트 산업에 접목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이는 SK그룹이 추진 중인 첨단 제조-인프라 연계 전략의 핵심 축인 셈이다. SK하이닉스와 SKC, SK실트론 등 그룹 반도체 계열사와의 시너지 확대를 노린 것이다.
■ SK에코플랜트 부채 부담과 정체된 수익성은 과제
SK에코플랜트는 오랜 기간 건설·플랜트·환경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2020년 이후 ESG 경영 강화 기조 속에 폐기물 처리, 수처리, 재활용 등 친환경 사업을 확장했지만 수익성은 정체됐다. 인수·합병을 통한 외형 확장 과정에서 차입금이 급증해 재무 안정성이 흔들렸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기준 총차입금은 약 7조원 수준으로, 단기성 차입금 비중이 70%를 넘는다. 이자 비용 상승 여파로 영업이익률은 2%대에 머물렀다. 회사는 고수익 첨단소재 및 반도체 인프라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실적 반등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회계 중과실에 따른 금융당국 제재, 자회사 매출 과대계상 논란, 영업정지와 과징금 부과 이력 등은 김 사장 체제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신뢰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기업공개를 앞둔 시점에서 재무 투명성과 내부 통제 강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투자 유치 당시 약 4조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이후 시가총액 목표가 10조원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실적 둔화와 회계 리스크, 시장 침체 등이 겹치면서 현재는 그 절반 수준도 쉽지 않다는 평가가 증권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 반도체·AI 인프라 설계·시공·운영까지 아우르는 회사로
김영식 사장의 첫 과제는 SK에코플랜트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단순 시공 중심의 건설사에서 벗어나 반도체·AI 인프라 설계·시공·운영까지 아우르는 첨단산업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하이닉스 시절 쌓은 양산 시스템 혁신 경험을 기반으로 회사를 꾸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정처럼 공정별 데이터를 활용해 원가 절감과 납기 정확도 향상, 품질 일관성 확보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건설업의 특징은 경험에 의존해서 의사결정을 하기가 보통이지만 제조업 수준의 정량적 관리로 바꿔갈 수도 있다.
또한 반도체·AI 시장 확대로 그룹 계열사 간 협력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첨단 반도체 라인, SKC의 고부가 소재, SK실트론의 웨이퍼 등 그룹의 기술 역량을 SK에코플랜트의 엔지니어링·시공 능력과 결합하면 반도체 인프라 전반을 통합하는 밸류체인 구축이 가능하다.
■ IPO는 그룹의 핵심 프로젝트…'하이닉스식 실행력'이 관건
SK에코플랜트의 IPO는 그룹 차원의 핵심 프로젝트이자 김영식 사장의 첫 번째 대형 과제다.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차입금 상환과 미래 성장 투자에 투입될 예정이지만, 실적 개선과 신뢰 회복이 병행되지 않으면 흥행은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김영식 사장이 반도체 중심의 신규 포트폴리오를 수익성으로 전환시키고 동시에 회계 투명성과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을지가 IPO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ESG와 친환경 사업 부문에서도 현금창출력을 높여 재무 구조를 안정시켜야 한다.
이번 김영식 사장 내정은 SK에코플랜트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인 셈이다. HBM4 주역 김영식 사장이 하이닉스식 실행력으로 재무, 신뢰, 성장이라는 세 가지의 핵심 축을 얼마나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