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사냥에 나섰다. 눈 앞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사냥감을 노리는 회심의 일격. 하지만 긴 사냥에 쫓기는 자도, 쫓는 자도 지칠대로 지쳐버린 경쟁구도가 쉽사리 끝나지 않으면서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더 미룰 수 없다" 美 대표지수 ETF 보수 '인하'
6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수수료 인하 방침을 발표했다. 이로써 미국 대표지수 ETF인 'TIGER미국S&P500'과 'TIGER미국나스닥100'에 대한 연 보수는 0.0068%까지 낮춰졌다. 이미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대표지수 ETF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승기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일 현재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ETF 시장 점유율 격차는 2.4%p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ETF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 신한자산운용 등 중위권에 있던 운용사들에게 성장분의 일부를 빼앗기면서 추격전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지난해에는 사실상 시장 점유율 유지에 만족해야 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지자 역전을 위해 현재 시장의 가장 큰 수요를 흡수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미래에셋운용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1위를 해보자는 의욕이 상당히 높았지만 올해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며 "상품에 대해 거의 실시간 수준으로 빨라진 '베끼기' 행태가 반복되는 상황에 3, 4위권 운용사들의 약진도 있어 주도권을 확실히 갖기 위한 고민이 컸다"고 전했다.
■ '세상을 놀라게 한' 수수료 인하?
다만 미래에셋운용이 1위 타이틀을 위해 결국 수수료 인하 카드를 꺼낸 것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5일 수수료 인하를 앞두고 홈페이지를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하다 D-1'이라는 문구로 대대적 '예고편'을 공개했다. 하지만 업계 최선두를 달리고 있는 운용사가 내놓은 회심작이 출혈 경쟁의 신호탄이라는 것은 참신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타사의 방침일 때는 상품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자사 방침일 때는 투자 저변 확대를 위한 것이라는 전형적인 '내로남불' 아니냐"며 "삼성운용의 1위 집착을 비판해 온 미래에셋도 결국엔 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전략이 아닌 혈투로 업계에 피해를 안기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인력 쟁탈전이 더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그동안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위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여느 경쟁사보다 치열하고 강도 높은 수준의 업무를 지속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산운용사 ETF 관계자는 "경쟁사들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고 있는 미래에셋 인력들 사이에서도 '1위 한번 찍고 나가자'는 분위기가 있던 것으로 안다"며 "1위를 차지하더라도 경쟁 압박 구도는 변함없을 것인 만큼 이탈 수요를 노리는 경쟁사들의 관심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