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이사회 김종훈 의장(자료=연합뉴스)
통상교섭본부장 출신 SK이노베이션 이사회 김종훈 의장의 행보가 업계 안팎의 시선을 끈다.
김 의장은 최근까지 약 2주 동안 미국 출장길에 올라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결과 뒤집기에 동분서주했다. 귀국 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결정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개진했다.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영입된 이사회 의장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김 의장은 최근 미국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등을 직접 만났다. LG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에 따른 미국 내 배터리 수입 판매 금지 처분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10년 동안 미국 내 배터리 수입·판매 중지 판결을 내렸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합의점을 찾지 못한 SK이노베이션은 여전히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ITC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비토)뿐이다. 판결 후 60일 내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수입금지 조치 해제가 가능하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 시한은 4월 11일로 열흘 남짓 남았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속도에 올인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미국 전 법무부 차관을 고문으로 영입하고 민주당과 인연이 깊은 로비회사 캐피톨시티그룹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실제 현지 정계 인사 등을 만나 로비한 것은 김 의장으로 알려져 있다. 김 의장 행보기 시선을 끄는 지점이다.
김 의장은 과거 통상교섭본부장으로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이번 로비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외교통상부 시절 우리 나라의 각종 협상을 이끌어왔던 인사지만 현재 SK이노베이션에서의 역할은 경영진에 대한 견제다.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회 위원인 김 의장은 독립성·전문성 강화를 위해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경영진의 경영 활동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경영진의 직무집행이 적법한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회 위원의 역할이다. 이런 역할을 맡고 있는 김 의장이 현지 정치권 인사를 직접 만나 로비 업무를 한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에도 무리가 없는 대목이다.
외신에 따르면 김 의장은 최근 현지 언론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수입금지 명령을 뒤집지 않으면 (조지아주는) 수조원대의 투자 유치 기회를 잃을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사실상 조지아주에 건설하고 있던 배터리 공장 철수를 시사한 셈이다.
조지아주 내 기대되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사라질 위기에 미국 정부도 단호히 외면하진 못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현지 정치권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SK이노베이션의 공장이 가동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가고 있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이 해당 공장을 인수하는 형태로 조지아주 일자리 창출 효과를 끌어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SK이노베이션의 카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