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4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같은 달 16일에 서명한 자국산 위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전기차 보조금 관련 내용이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트위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가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 내 전기차 점유율 2위인 현대차와 기아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현대차 아이오닉5는 보조금 못받고 4만달러(약 5250만원)에 팔아야한다. 반면 비슷한 성능의 경쟁 차종인 포드 머스탱 마하-E는 보조금 7500달러(약 1000만원) 혜택을 받아 3만7500달러(약 4800만원)로 가격이 내려간다. 아이오닉5보다 저렴해지는 셈이다.
우리 정부까지 나서서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현대차·기아는 조속히 미국 내 전기차 공장을 세우거나 기존 내연기관차 공장을 전기차 혼류 생산으로 전환할 때까지 버텨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 전까지는 보조금에 상응하는 가격 할인 등으로 어려운 싸움을 해야할 형편이다.
■ 통상교섭본부장, 백악관 당국자 만나 공감대 형성
7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한미 양국 정부는 IRA의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제외되는 문제에 공감하고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6일(현지시간)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다. 안 본부장은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면담했다.
안 본부장은 “디스 위원장과 면담에서 (전기차 보조금 관련) 문제를 풀어가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실질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간 조 바이든 행정부는 IRA에 따라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에서 차별을 받는 부분에 대해서 이해한다면서도 의회가 법을 이미 제정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IRA는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종 서명한 법안으로, 미국 내 전기차 신차에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세액 공제를 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서 생산된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들은 세제혜택에서 제외돼 미국 내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에 타격을 입게 된다.
안 본부장은 그간 바이든 행정부의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반응과 달리 이번 면담에서는 기조가 달랐다고 전했다.
안 본부장에 따르면 디스 위원장은 “(전기차 보조금) 문제가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양국 간 경제통상관계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라는 심각성에 대해 백악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조속히 풀어가도록 하자”고 밝혔다.
또한 안 본부장은 “한미 간 IRA 문제를 포함해 향후에도 여러 가지 통상 문제를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자는 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안 본부장은 오는 7일에는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IRA 관련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사진=현대자동차)
■ 미국 내 전기차 2위 현대차, 3위 포드에 밀릴판
IRA로 인해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 차량들이 당장 경쟁력을 잃을 전망이다.
현대차·기아·SNE리서치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미국 내 순수 전기차 주요 차량 판매는 1위 테슬라 ‘모델 Y·3·S’ 약 27만3000대이며, 2위가 현대차·기아 ‘아이오닉5·EV6’ 약 2만9900대다. 3위는 포드 ‘머스탱 마하-E’ 약 2만2600대가 뒤를 이었다.
IRA에 따른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은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을 받지 못하면 현대차 아이오닉5의 소비자 가격은 4만 달러(약 5250만원) 가량이다.
반면 비슷한 성능이면서 아이오닉5 판매량을 추격하는 포드 머스탱 마하-E는 보조금 혜택을 받아 4만4000달러(5800만원)에서 3만7500달러(약 4800만원)로 가격이 내려간다. 아이오닉5보다 저렴해지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미국의 빅3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은 전기차 시장을 잡기가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IRA로 인해 GM, 포드 등 미국 완성차 업체가 이 시장에서 유리해졌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 생산라인 (사진=현대자동차그룹)
■ 조지아 전용공장 설립 전까지 ‘버티기’…기존 공장 혼류생산 가격할인 등 대안
최근 현대차·기아는 IRA 관련 정의선 회장이 미국을 방문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내 생산공장을 조속히 마련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이때까지 버틸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현대차는 오는 2025년 완공 예정이던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을 2024년 하반기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완공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동안 대안이 필요하다.
기존 미국 알라바마와 조지아주 공장 내 내연기관차 라인의 일부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방안과 미국 정부 보조금에 상응하는 가격 할인을 제공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노조 동의와 생산 장비 확보가 선행되면 라인 전환만으로 3개월 정도의 시일이 소요되기에 2023년에도 현지 생산이 가능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대응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실제로 올해 말부터는 알라바마 공장 내 내연기관차 라인에서 제네시스 전기차 GV70 모델을 혼류 생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현재 생산되는 내연기관 모델 중 일부를 감산하는 문제와 부품 수급 문제, 2024년 하반기 완공될 전기차 전용 공장과 중복 가능성 문제도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또 하나의 방안은 일시적으로 미국 정부 보조금에 상응하는 가격 할인 제공이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7500달러의 보조금 중 절반은 배터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배터리 규정만 통과해 3750달러의 보조금을 받는 다른 모델들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이라며 “단기 비용부담이 어느정도 있더라도 장기 생산 전략에 더 큰 유연성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대수가 2023년 10만대로 가정하면 3750달러의 할인은 합산 1300원 환율 기준으로 4875억원이다. 7500달러 할인은 합산 975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는 현대차·기아의 합산 영업이익 대비 약 2.8~5.7%로 잡아놓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1년 반에서 2년 정도의 일시적 비용 증가이겠지만 내연기관차 수익을 통해 이러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충분한 체력을 비축했다는 점과 전용 공장의 완공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과도한 우려보다는 여러 대안을 고려해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