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내 게임업계에 위기론이 팽배하다. 각 게임사들마다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이 이어지고, 시장에서 주목받는 신작들도 부쩍 줄어들었다. 이에 뷰어스는 국내 게임업계 위기의 원인을 짚어보고 난관을 해쳐나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지스타 2023 넷마블 부스. (사진=넷마블)
코로나19 시기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규모는 20조원을 넘어섰으며, 전 세계 게임시장 순위 4위를 달성했다. 국내 게임업계 역시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몸집을 한껏 키웠다. 늘어나는 수요에 개발자들의 연봉은 높아지고, 재택근무로 개발이 지연되자 인력도 새로 뽑으며 운영 비용은 점점 증가해왔다.
그러나 규모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도 전에 엔데믹 전환으로 게임업계는 고난의 시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후 출시된 모바일 MMORPG 등 주요 게임들의 국내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의 호응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게임사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업계는 신작이 게임 이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전 세계 게임업계에 들이닥친 '보릿고개'가 한국에서도 현실화됐다는 평가다.
■ 모바일게임 침체기…게임사들 구조조정 '허리띠'
김성완 부산인디게임커넥트(BIC) 집행위원장(동양대 게임학부 교수)은 한국 게임 위기론에 대해 "산업의 트렌드는 대체로 10년 정도의 주기로 움직이고, 게임 산업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의 게임 산업은 1990년대에는 PC 패키지 게임, 2000년대에는 온라인게임, 2010년대에는 모바일게임이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10년 주기로 보면 모바일 게임의 전성기가 끝나고 쇠퇴하는 시기인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게임 산업의 쇠퇴기가 2년 정도 늦어졌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게임보다는 야외 활동이나 여행 등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 시기의 호황이 펜데믹 이후에도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여겼다면 전략적인 실패"라며 "하필 펜데믹 기간 동안 유저들이 주로 즐긴 게임들이 쉽게 질리는 게임들이었던 영향도 크다"라고 분석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보릿고개'에 게임사들은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튼튼한 IP를 보유한 대형 게임사들조차 사업팀을 해체하고, 중·소규모 게임사 역시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를 정리하면서 '트릭스터M·프로야구H3' 등의 서비스를 중단했고, 아이온 IP 기반 신작을 제작하던 아이온 리메이크 TF도 해체했다. 컴투스는 메타버스 자회사 '컴투버스'의 조직을 축소했고, 시프트업은 '데스티니 차일드'의 서비스를 종료하며 개발팀 희망퇴직을 알렸다.
데브시스터즈 역시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한편 지난 3월엔 유럽에 진출한 법인을 정리했다. '창세기전' IP를 보유한 라인게임즈는 자회사 레그스튜디오 개발팀을 해체했고, '소울워커'를 개발한 라이언게임즈는 60여 명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 수장 바꾸며 핵심 경쟁력 강화 집중
게임업계는 구조조정에 이은 위기 극복 방안으로 경영 체제의 변화를 택했다. 엔씨소프트는 창사 이래 첫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하며 글로벌 게임사로의 도약을 위해 선택과 집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택진 대표는 게임 개발에 집중하고, 박병무 신임 공동대표는 경영 내실을 다지며 투자 및 신성장동력 발굴 M&A에 주력할 계획이다.
넷마블도 김병규 경영기획담당 부사장을 각자대표로 선임했다. 비용 효율화와 경영 내실화를 이어가는 한편 상반기 출시 예정인 글로벌 기대작들을 통해 흑자전환을 이룬다는 방침이다.
넥슨은 강대현 최고운영책임자(CCO)와 김정욱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를 새 수장으로 임명하며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기존 대표를 맡았던 이정현 대표는 일본 법인 신임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위메이드, 카카오게임즈, 데브시터즈, 컴투스 등 주요 게임사들도 수장을 교체하거나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게임사들의 체제 변화가 당장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임사의 실적은 다년간 준비한 신작의 흥행 여부에 좌우되는 만큼, 장기간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게임사는 재미있는 게임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스타 2023 엔씨소프트 부스. (사진=엔씨소프트)
■ 장르, 플랫폼 다각화 전략
게임업계는 장르 및 플랫폼 다각화에 나서는 중이다. '블루아카이브', '니케' 등의 흥행사례를 통해 서브컬처 장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해당 장르는 과거엔 마니아들만이 하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MMORPG 만으로는 힘들다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블레이드앤소울' IP를 기반으로 한 수집형 RPG '프로젝트BSS'를 연내 출시할 예정이며, 넷마블도 '그랜드크로스' IP기반의 신작 '데미스리본'을 개발하는 중이다. 웹젠은 MMORPG 일변도에서 벗어나 첫 자체개발 수집형 RPG '테르비스'를 올해 출시할 계획이다. NHN 또한 링게임즈와 '스텔라판타지' 퍼블리싱 계약을 맺으며 서브컬처 게임 시장에 합류했다.
PC와 콘솔을 아우르는 크로스플랫폼 시장도 주목받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게임 이용률이 74.4%(2022년)에서 62.9%로 급감하는 와중에도 콘솔게임 이용률은 되려 전년 대비 1.8%p 증가했다. 전체 게임 이용자 중 콘솔게임 이용률은 24.1%에 달한다.
그간 콘솔시장은 국내 게임사들의 불모지로 여겨졌지만, 성공사례가 없지는 않다. 지난해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이 출시 후 한달 만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넥슨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가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콘솔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시프트업의 '스텔라블레이드'가 PS5(플레이스테이션5) 독점 출시를 오는 4월 앞두고 있다. 넥슨도 루트슈터 신작 '퍼스트 디센던트', '던파' IP기반의 ARPG '퍼스트 버서커: 카잔', 마영전 IP 기반 신작 '빈딕투스: 디파잉 페이트' 등의 출시를 예고한 상황이다. 엔씨소프트 역시 올해 상반기 닌텐도 스위치 버전의 대전 액션 '배틀 크러쉬' 출시를 예고한 상태다.
김성완 BIC 집행위원장은 글로벌 시장의 게임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의 최신 게임 트렌드는 샌드박스, 서바이벌, 크래프팅 등으로 변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게임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를 기점으로 게임에도 생성 AI를 활용한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게임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게임들이 트렌드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다만 "대부분의 한국 게임사들은 익숙한 기존 게임의 틀 속에서 생성 AI를 단지 생산성 향상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에만 머무르고 있다"며 "새로운 형식의 게임은 늘 그렇듯이 기존의 유명 대형 게임사가 아니라 인디 게임 스튜디오에서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