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손기호 기자] 서울 부동산시장을 묶어왔던 토지거래허가제가 일부 해제되면서 강남권 집값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서울시는 강남구 대치·삼성·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 4개 동 291개 단지의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 지난 5년간 허가제로 묶여 있던 이들 지역에서는 이제 허가 없이도 매매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강남3구 아파트값은 즉각 반응하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신고가 거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건설업계와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억눌렸던 거래가 정상화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투기 수요를 다시 불러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토지거래허가제 추가 해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시장 과열 시 즉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
■ 토지거래허가제 해제와 강남3구 아파트값 반등
토지거래허가제는 부동산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을 지정해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 및 주택 거래 시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1978년 도입된 이후 주택시장 과열 시기에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서울시는 2025년 2월 12일 국제교류복합지구(GBC) 인근 4개동(잠실·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 305곳 중 291곳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또한 신속통합기획 재건축‧재개발 사업지 6곳에 대해서도 지정을 해제했다.
이번에 해제된 지역에서는 그동안 주택을 매수할 경우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으나, 이제는 별도의 제한 없이 매매가 가능해졌다.
다만 투기 가능성이 높은 재건축 추진 단지 14곳과 압구정, 여의도, 목동, 성수동 등 주요 재건축 지역은 여전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남아 있다. 서울시는 향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추가 해제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토지거래허가제가 해제되면서 강남3구 아파트값은 즉각 반등했다. 해제 이후 해당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잠실, 삼성, 청담동 등 토허제가 해제된 지역의 아파트 방문자 수가 2배 가량 증가했으며, 시세도 상승했다.
2월 거래량은 5000여건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해제 시행 후 일주일간 강남3구 아파트 평균 거래가는 직전 기간 대비 8% 상승했다. 잠실, 대치, 청담 일대에서 2억~3억 원씩 오른 매물도 등장했으며, 일부 단지에서는 신고가 거래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강북 및 비강남권 일부 지역은 여전히 가격 하락세를 보이며 온도차를 나타냈다. 하지만 강남 집값 상승세가 마포, 용산, 성동 등 강남 인접 지역으로 확산되는 조짐도 포착되면서, 시장에서는 추가적인 가격 상승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 토허제 해제, 시장 정상화 vs 투기 조장 논란
부동산 업계는 이번 조치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실수요자들마저 매매 허가를 받아야 했던 비효율적인 시장 구조가 개선됐다”며 “이번 해제가 부동산 시장 정상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건설업계는 대출 규제와 실거주 의무로 위축됐던 매매·전세 시장이 점차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전세 시장에서는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가격 안정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 시민단체와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번 해제가 투기 세력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강남권 재건축 기대 지역에서 투기적 거래가 다시 시작될 경우, 서울 전역의 집값 상승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며 해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야당 측은 “강남 집값이 나홀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규제를 푼 것은 시기상조”라며 “실수요자 보호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부, 시장 모니터링 강화·추가 대책 마련 검토
정부는 시장 반응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 시 추가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부동산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관계 부처 간 논의를 통해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이 과열될 경우 재지정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닌 과도한 투기적 거래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앞으로 추가 해제 지역을 검토하면서도, 실수요자 보호와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토지거래허가제 완화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은 거래 활성화와 집값 안정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이 나타나고 있지만, 장기적인 추세로 이어질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정부의 추가 규제 여부, 대출 정책 변화, 금리 인하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들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철한 한국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상황이기 때문에 토지거래허가제 해제가 시장을 크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 회복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시장 회복을 위해서는 지방 미분양 해소 등 보다 광범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단순히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을 자극하는 것보다, 금리·공급 정책 등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