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지난 2024년,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에서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

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뚝심있는 경영과 확고한 비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시장의 변곡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이를 그룹 전체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결단이 지금의 현대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을 시작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정 회장은 2018년 현대차그룹 공동대표로 공식 취임하며 본격적인 변화를 주도했다. 그해 기아의 반등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현대차의 실적 또한 뚜렷하게 개선됐다.

당시 기아차는 매출 54조1698억원, 영업이익 1조1575억원을 기록하며 직전해 하락세를 딛고 반등했다. 현대차 역시 전년 대비 9.2% 증가한 매출 105조7464억원을, 영업이익은 38.9% 증가한 3조6055억원을 기록했다.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연매출 100조원을 달성하며, 전통적인 제조기업을 넘어 새로운 도약의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 결과 현대차그룹은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위기를 최소화하며 안정적인 회복세를 유지했다. 이는 위기 대응뿐 아니라 구조적 체질 개선이 병행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공장에서 로봇이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 거듭나겠다"···제조업 문법 탈피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정체성을 '서비스 기업'으로 정의하고, 그룹 전체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를 필두로 전동화 사업을 추진해온 것을 비롯해,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UAM과 로보틱스는 각각 1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됐으며, 아직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태다. 그럼에도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에는 정 회장의 확고한 철학이 기저에 깔려 있다. 상위업체를 따라가는(Fast follower) 것이 아닌, 업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장기적 혁신을 우선한다는 방침이다.

친환경차 전략 또한 정 회장의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다. 지난 2020년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론칭,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선보였다. 현대차에 따르면 이 플랫폼은 전동화 시대를 대비해 경쟁사들이 갖지 못한 전기차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정 회장의 판단에서 비롯됐다.

5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아이오닉-EV' 시리즈를 필두로 기술력을 증명하는 중이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2024 월드카 어워즈'에서 각각 '올해의 자동차', '올해의 전기차' 부문(기아 EV9), '올해의 고성능차' 부문(현대차 아이오닉5 N)에서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E-GMP' 플랫폼의 자체 동력시스템 또한 지난해 미국 워즈오토 '최고 10대 엔진' 분야에서 수상을 거둔 바 있다.

이러한 기술 기반이 있었기에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도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전년 대비 44.6% 증가한 39만7200대를 판매했다. 지난 2023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하는 가운데, 그간 쌓아온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이며 위기를 극복했다는 설명이다.

올해 역시 하이브리드 차량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준중형·중형차를 중심으로 적용됐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소형 ▲대형 ▲럭셔리 라인업까지 확대하고, 성능과 연비가 대폭 개선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TMED-Ⅱ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완의 경영권 승계…마지막 퍼즐은?

다만 끝나지 않은 지배구조 개편은 여전한 약점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순환출자 구조는 오너 일가의 지배력 유지에는 유리하지만, 경영 투명성 저하 및 대주주 이익 독식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 사업회사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다만 해당 방안은 합병비율이 총수 일가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계산됐다는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정의선 회장은 지난 2020년 취임 직후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하며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핵심 계열사 현대모비스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주요 쟁점이다.

업계에서는 지배 구조 개편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다만 어떤 방식이든 정 회장으로서는 지분 확보를 위한 대규모 자금이 있는 편이 유리하다.

이에 미래 모빌리티 사업의 핵심인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활용하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 최근 현대엔지니어링이 잇따른 인명사고로 기업공개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모빌리티 신사업에 주력해 새 돌파구를 찾는다는 전략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정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21.9%를 보유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상장에 성공하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밖에 사업 재편을 통한 경영권 강화도 해결책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3년 4월 현대오토에버, 현대오트론, 현대엠엔소프트 등 3개 IT 계열사를 합병, 현대오토에버를 그룹 내 SW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