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을지로 사옥. (사진=대우건설)


서울 강북 최대 재개발 사업지인 한남2구역이 대우건설과 다시 손을 맞잡았다. 두 차례에 걸친 시공사 재신임 투표 끝에 대우건설은 가까스로 시공권을 방어했다. 김보현 대표이사의 직접 설득과 시공사 교체 시 발생할 막대한 시간·비용 손실 경고가 조합원들의 표심을 움직인 결정적 요인으로 분석된다.

■ 37표 차이로 살아남은 대우건설

한남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은 지난 27일 서울 중구 한일빌딩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대우건설 시공사 재재신임 안건을 상정했다.

투표에는 852명의 조합원이 참여했으며, 찬성 439표, 반대 402표, 무효·기권 11표로 집계됐다. 불과 37표 차이로 대우건설이 가까스로 재신임을 확보했다.

한남2구역 재개발 사업은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일대 11만1102㎡를 정비해 아파트 1537가구를 짓는 대형 프로젝트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끼고 있으며, 인근에는 보광초등학교 등 교육 인프라도 갖춰져 있어 주목을 받아왔다.

■ ‘118 프로젝트’ 무산에 위기…‘사업 지연·2698억원 손실’로 설득

대우건설은 2022년 시공사 선정 당시 ‘118 프로젝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고도제한(90m)을 완화해 최고 118m, 21층 아파트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으로, 일반분양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고도제한 완화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이 계획은 좌초됐다.

대우건설은 대안으로 2블록과 3블록 사이 관통도로를 제거해 대형 커뮤니티와 지하주차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서울시가 교통량 분산 필요성을 들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공약 이행 실패에 일부 조합원들의 불만이 커졌고, 결국 재재신임 총회까지 이어지게 됐다.

대우건설은 재신임 총회를 앞두고 사업 지연과 금전적 손실 리스크를 조합원들에게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시공사 교체 시, 새로운 시공사 선정과 설계 변경,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 등 행정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해 최소 1년6개월 이상의 추가 시간이 소요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추가 공사비 2015억원, 인허가 용역비 180억원, 국공유지 매입 지연 배상금 503억원 등 총 2698억원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김보현 대표이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대우건설이 조합을 대신해 국공유지 매입비 조달을 위해 브릿지 PF를 연대보증했다”며 “지하 커뮤니티 공간 통합 등 커뮤니티 개선에도 지속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별 설명회, 문자 발송, 질의응답 자료 배포 등 총력 설득에 나선 결과, 조합원들은 불확실성보다 사업 안정성을 선택했다.

대우건설 김보현 대표이사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대우건설 유튜브 갈무리)


■ 브랜드 교체 기대보다 사업 현실 택해

일부 조합장 측은 “대우건설을 해지하고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를 유치하자"고 주장했지만 현실성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비업계에서는 ”현장설명회 참석과 본입찰 참여는 전혀 다르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남3구역, 흑석11구역 등에서도 대형 건설사들이 설명회에만 얼굴을 비추고 본입찰에는 불참하거나 조건 미달로 탈락한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대형사들은 수익성과 리스크를 철저히 따지는 ‘선별 수주’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조합원들도 브랜드 교체 기대감보다는 시공사 교체로 인한 시간 지연, 비용 부담 등 현실적 리스크를 더 크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남2구역 재신임 결과는 최근 정비사업 트렌드 변화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는 대형 건설사 브랜드가 시공사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업 추진 속도와 안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으로 인허가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조합원들은 시공사 교체에 따른 사업 지연 리스크를 가장 큰 리스크로 인식하게 됐다. 흑석11구역, 한남3구역 등에서도 시공사 교체 이후 사업 일정 지연, 공사비 증액 논란이 이어지며 경계심이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 하반기 이주 목표…“기대와 우려 여전히 교차, 품질로 증명해야” 지적

대우건설은 시공권을 지켜냈지만 본격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 조합은 이르면 6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하반기부터 이주를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관리처분 인가를 위한 타당성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다.

대우건설은 관리처분 인가와 이주 개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서울시와 협의 중인 관통도로 지하 활용 방안 구체화, 일반분양 수익성 보완 등 후속 과제들도 신속히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합원들은 실익을 고려해 대우건설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며 “약속한 속도와 품질로 신뢰를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재신임 기회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조합, 서울시, 금융기관 등과 긴밀히 협력하며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