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의 후순위채 조기상환(콜옵션 행사) 연기 이슈가 발생한 가운데 여타 보험사들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증권가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본성채무증권의 발행관련 제도 및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하나증권은 12일 크레딧보고서를 통해 "자본성채무증권은 일종의 Capital Washing(위장자본)"이라면서 관련제도 및 관행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적시했다. 김상만 크레딧애널리스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코코본드 이외의 자본성채무증권의 발행과 관련된 제도 및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이른바 ESG에서 지적되는 그린워싱과 유사한 성격의 '위장자본 논란'은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지만 만약 최종적으로 옵션행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여타 보험사 등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사실 자본성채무증권은 미국발 금융위기, 유럽발 재정위기 등을 거치면서 자본력이 취약한 유럽계 은행들의 자본비율을 빠르게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과도기적인 장치로서의 성격이 짙었다. 국내은행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자본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굳이 도입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른바 BIS(국제결제은행)표준을 전통적으로 준수해온 입장이라 이에 따르게 된 것. 당초 은행에 적용했던 규정이 비은행 금융기관에도 준용돼 오늘에 이르게 됐다.
문제는 자본성채무증권의 발행구조에 있다. 김 애널리스트는 "후순위채권의 경우 통상 10년만기에 5년 콜옵션 조건으로 발행되고 있으며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영구 또는 연장가능한 30년만기에 5년 콜옵션 조건으로 발행되고 있다"면서 "그간 관행적으로 콜옵션이 행사가능한 첫 번째 기일인 발행 5년후 시점이 실질만기인 것으로 투자자들 사이에 간주되고 그렇게 활용되어온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보고서에는 자본성채무증권 발행 급증에 대한 부작용도 언급됐다. 평상시에는 차환 및 콜행사가 별 문제없이 이뤄지겠지만 거시적 조달환경이 저하되거나 개별금융사차원의 경영상황이 문제될 경우 차환리스크는 바로 위기상황으로 점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애널리스트는 "금융시장 관련 부정적 영향은 차치하고라도 해당 기업의 일반 선순위채권자들 또한 이 같은 자본성채무증권의 남발에 따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자본성채무증권에 본래 기대되는 역할은 경영악화 등 유사시 자본적 버퍼를 제공함으로써 일반채무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을 재무적 위험으로부터 절연시키는 것 또한 포함돼 있는데 자본성채무증권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면 안정요인이 아니라 거꾸로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설령 옵션행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그 채권이 원래 그렇게 발행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관행이 그렇지 않았다면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자본성채무증권의 금리가 높은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국내 금융사들의 자본성채무증권(후순위채권,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급격히 늘고 있다. 2022년 16.7조원까지 증가했던 자본성채무증권 발행규모는 2023년 13.8조원으로 감소하다 지난해 다시 21.7조원으로 급증했다. 5년 전인 2019년(11.5조원)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 특히 과거에는 주로 은행 및 은행지주사들의 발행이 주종을 이뤘으나 지난해엔 비은행 금융사들의 발행규모가 은행/은행지주을 크게 앞질렀다.
김 애널리스트는 "최근 신용평가기관 등을 중심으로 금융사들의 자본성채무증권 발행과다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금융사들의 자본성채무증권이 법적 테두리 내에서 발행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의존도가 과거 대비 확대되면서 자본의 질적 구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